누진제 폭탄 맞나.."블랙아웃보단 전기료가 더 걱정"(종합)

文정부 에너지로드맵 만든 전문가들 전망
①원전 폐쇄 거의 없어 충분한 발전소 설비
②수요 감축 발동 ③2011년 정전사태 반면교사
"산업용보다 비싸, 주택 누진제 완화·폐지해야"
  • 등록 2018-07-25 오전 5:59:53

    수정 2018-07-25 오전 5:59:53

시민들이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난 15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에서 에어컨 실외기로 가득찬 한 건물 외벽 앞을 지나갔다. 기상청은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오히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보다는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고민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국가 에너지 로드맵(8차 전력수급기본계획·3차 에너지기본계획) 작성에 참여한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렇게 밝혔다. 폭염이 계속돼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대규모 정전 사태는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오히려 지금은 누진제로 인한 주택용 전기요금 폭탄을 맞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진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3차 에너지기본계획 워킹그룹 위원장(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 교수), 유승훈 워킹그룹 위원(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조영탁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24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블랙아웃이 올 것이라 생각 안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야당 입장과 상반된 전망이다. 앞서 지난 23일 전력 공급 예비력이 760만kW, 예비율은 8.4%로 떨어졌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의 최소예비율(13%)을 밑도는 수치다. 이 때문에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23일 “블랙아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블랙아웃 올 것이라 생각 안 해”

이들 에너지 전문가들이 야당 입장과 상반된 입장을 밝힌 건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발전소 설비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조 이사장은 “원전 정비가 끝나 곧 가동되고 지역별 비상발전기도 준비돼 있다”며 “설비에 여유가 있어, 전력수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빠르면 이달 말부터 250만kW 이상의 설비공급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는 탈원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역설이기도 하다. 문재인정부 임기 중에는 이명박·박근혜정부 당시 계획(5~7차 전력수급기본계획)대로 발전소가 건설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전력(015760)에 따르면 지난해 원자력의 발전설비 용량은 22.529GW로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보다 컸다. 탈원전(원전 폐쇄)을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만 폐쇄했기 때문이다.

유 위원은 “올해 전력 수요예측이 빗나간 진짜 원인은 탈원전 때문이 아니라 이상 기온으로 기상청 기후 데이터가 틀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최대전력수요 전망은 기상청의 평년기온(1981~2010년) 수준을 전제로 예측됐다. 이 때문에 유 교수는 “올해 연말 확정되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이상기온을 고려해 수요 전망을 최소·최대 범위로 표시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원전 설비 용량이 노후 원전 폐쇄로 전년보다 일부 감소했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보다 여전히 컸다. 단위=MW, [출처=한국전력 전력통계속보]
둘째, 수요감축요청(DR) 때문이다. DR은 전력거래소와 계약한 기업이 피크 시간에 전기 사용을 줄이면 정부가 보상하는 급전 제도다. 유 위원은 “DR 발동으로 2GW(200만kW) 이상 예비력이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8차 계획에는 DR로 3.82GW(382만kW)까지 감축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다만 DR을 자주 발동하면 기업 부담이 커지게 된다. 지난해 여름에 DR을 갑작스럽게 두 차례 발령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산업부는 하루 전에 DR 발동을 예고해 기업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또 전력 예비력이 1000만kW로 떨어지면 시행하기로 했다.

셋째 전방위 대비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모두가 안심하지 않고 폭염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1년 9월15일 당시 이상기후로 전기 사용이 급증하자 예비전력이 24만kW까지 떨어져 블랙아웃(예비력 0kW로 대규모 정전)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전력거래소는 예고도 없이 순환정전(롤링블랙아웃)을 했다. 당시 전력 과부하를 알리는 신호인 전력주파수가 떨어지는데도 전력거래소는 이를 무시했다.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부)는 전력 수요와 공급을 잘못 계산했다.

서울고법 행정1부(곽종훈 부장판사)은 당시 지식경제부 과장이 지식경제부를 상대로 낸 징계(견책)처분 취소 소송에서 “당시의 객관적 상황을 파악하고서도 실무 매뉴얼에 따른 보고를 제때에 하지 않았거나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제때 보고하지 않았다. 징계 사유는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순환정전 사태 이후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이후 관가에선 무엇보다도 피크 수요를 비롯한 전력수급을 1순위로 챙겼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2011년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공공기관 모두 전력수급에 사활을 걸었다”는 게 이들 에너지 전문가들 지적이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지난 22일 오전 서울 광진구 현대홈타운 7차 아파트를 찾아 전력설비를 점검하기도 했다.

“누진제 완화나 폐지 검토해야”

오히려 이들 전문가들은 전력수급 문제보다 전기요금 부담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6년 12월 당시 산업부와 한전은 누진제를 폐지하지 않고 완화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올해는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게 불가능해 전력 수요·요금이 예년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누진제 최고단계(3단계·401kWh 이상)의 판매단가는 kWh당 280.6원으로 산업용보다 2배 이상 비싸다. 폭염이 계속되면 8~9월에 요금폭탄 고지서를 받을 수 있다.

유 위원은 “원가 이하인데다 사용량이 많은 산업용 경부하 요금을 올리고 점차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전을 상대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인 곽상언 변호사(법무법인 인강)는 “밥을 한 끼 먹었는데 세 끼 이상의 비용을 내라는 게 44년간 지속된 전기요금 누진제의 본질”이라며 “불합리한 누진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전은 법정에서 “전기소비 절약, 저소득층 배려 등을 위해 누진제를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6곳의 재판부(1심 3번·항소심 3번)는 한전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인천지법 민사16부(부장판사 홍기찬)는 “사용자들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줬다”며 소비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1974년 누진제가 도입된 이후 부당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홍 판사는 “주택용에만 누진제를 도입해 전기 사용을 억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곽 변호사는 “전력 소비량은 가구원 수에 비례했다. 그 결과 가족이 많은 저소득자는 고소득자보다 더 많은 요금을 내고 있었다”며 “누진제가 저소득층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다음 재판의 선고는 오는 9월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산업부 관계자는 “누진제 개편은 검토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블랙아웃=전기가 0kW까지 내려가 모든 전력시스템이 정지하는 전국 단위 대규모 정전 사태다.

※롤링블랙아웃=전국 단위의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력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2011년에 순환정전이 발생했다.

전력예비율이 폭염으로 지난 23일 8.4%로 떨어져 최소예비율을 밑돌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년)에서 최소예비율을 13%로 정했다. 단위=%. [출처=전력거래소]
지난 24일 오후 5시에 최대전력수요가 9248만kW를 기록해 예비율이 7.7%로 떨어졌다.[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주택용 누진제 최고단계(3단계·401kWh 이상)의 판매단가는 kWh당 280.6원이다. 산업용 전력 판매단가가 일반용·주택용 전력보다 더 싸다. 산업용은 심야시간대 값싸게 공급하는 경부하요금이 있다. 주택용에만 누진제가 적용된다. 이 같은 형평성 문제 때문에 산업용 요금 개편 요구가 거셌지만,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업계 부담을 고려해 올해에 개편하지 않기로 했다. 교육용은 공익적 특성을 감안해 판매단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단위=원/kWh. 2017년 기준. [출처=한국전력 전력통계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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