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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공연을 지켜보던 무리는 자리를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같은 해 7월 BTS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빅히트)에 투자를 집행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LB PE(프라이빗 에쿼티) 직원들이었다. 여러 차례 미팅과 리서치를 통해 189억원 규모 지분 매입을 결정했지만 인기 요인을 확인하고 싶었던 회사 구성원들이 직접 공연장을 찾은 것이었다.
BTS가 이미 톱스타 반열에 오른 상황에서 결정한 투자다 보니 이들이 책정한 기업가치(2700억원)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투자 8개월 만인 이듬해 5월 넷마블게임즈에 보유 지분을 560억원에 팔았다. 연간 내부수익률(IRR)로 따지면 385%에 달하는 수치다. 같은 기간 기업가치는 27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
남동규 LB PE 대표는 “3시간 10분간 공연하는데 꿈쩍도 안 하고 응원하는 팬들을 보면서 인기의 원인이 무엇일까 한참 생각했다”며 “노래에서 젊은 세대가 사회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달해 주는 느낌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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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국내 증시가 주춤한 상황에서도 빅히트는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 화두(話頭)다. NH투자증권(005940)와 한국투자증권, JP모건, 미래에셋대우(006800)로 이뤄진 주간사단은 빅히트의 기업가치를 최대 6조원으로 점치고 있다. 2011년 100억원(추정치) 남짓이던 기업가치가 9년 만에 600배 가까이 치솟은 것이다. 국내 엔터산업은 물론 IPO를 앞둔 어느 기업을 찾아도 유례가 없는 사례다.
이때 손을 내민 곳은 SV인베스트먼트(SV인베)와 LB인베스트먼트(LB인베)였다. SV인베는 2011년부터 2년에 걸쳐 빅히트에 40억원을 투자했고 LB인베도 2012년과 2016년 총 65억원을 투자했다. BTS가 2013년 6월에 데뷔한 점을 고려하면 한발 앞서 간 결정이었다. 경기고, 서울대 인맥에다 외부 투자금을 철저하게 갚기로 유명했던 방시혁 대표에 대한 투자라 봐도 무방했다.
이후 BTS가 글로벌스타로 발돋움했지만 지금과 같은 기업가치를 받게 된 배경에는 빅히트가 추구한 사업 전략도 한몫했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설명이다. 빅히트는 인기 가수의 행보를 팬들이 무조건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팬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따라가자는 방침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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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트가 펼친 전략은 빅데이터와 홍보수단 패러다임 변화였다. 빅히트는 BTS의 팬클럽인 ‘아미’(ARMY)를 대상으로 약 24페이지 분량의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설문 시작 일주일 만에 약 40만개의 설문 응답이 쌓여 나갔다. 회사와 BTS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빅데이터로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상파 가요프로그램 컴백이 주를 이루던 홍보수단을 유튜브로 선회한 점도 파격적이었다. 팬들이 궁금해하는 공연 일정이나 뒷이야기, BTS 멤버의 일상을 전하는 빅히트 유투브 채널(빅히트+방탄TV)은 27일 현재 6370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이전 공연실황을 유튜브 채널로 방송하면서 220만명의 실시간 시청자를 끌어모으기도 했다.
빅히트는 상반기(6월)내 상장 예비심사 청구를 목표로 막바지 실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연예기획사들이 코스닥에 입성한 것과 달리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목표로 IPO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주관사 계획대로 6조원 상당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코스피에 상장할 경우 KT(030200)(27일 기준 6조1662억원)나 우리금융지주(316140)(6조165억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전망이다.
기록적인 성장을 거듭한 빅히트의 최종 기업가치는 결국 BTS가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년간 말로만 무성했던 IPO가 최근 속도를 내는 것은 BTS멤버들의 군 입대 문제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며 “기존에 없던 높은 밸류에이션에다 빅히트가 영위하는 업종 자체도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어느정도의 가치를 인정받을 지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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