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m 대형 불상 복장 열어보니.."조선왕실과 불교의 긴밀한 관계 나와"

국보 승격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뱃속에서 복장유물 나와 눈길
"조선후기 왕실 시주 기록 이례적"
  • 등록 2021-06-28 오전 6:00:00

    수정 2021-06-28 오후 10:50:05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3m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에 국내에 현존하는 불교조각 중 유일한 삼신불(비로자나불상·석가모니불·노사나불상) 구성인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이 최근 국보로 지정돼 눈길을 끈다. 삼신불은 불교의 세계관인 화엄사상에 근원을 둔 도상으로, 불화나 사경 등에는 종종 보이지만 조각품으로는 화엄사 불상이 유일하다. 삼신불좌상은 2008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었다(보물 제1548호).

국보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노사나불좌상(사진=문화재청)
이번에 삼신불좌상이 국보로 승격될 수 있었던 건 불상의 불교조각사적 가치에 더불어 불상의 뱃속에서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복장유물이 나오면서다. 조선시대 불상 전문가인 유근자 동국대 미술학부 초빙교수는 “새롭게 발견된 복장유물은 조선 후기 왕실과 불교계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조선 후기에 이 같은 자료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복장유물은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불경·서책·보화 등이다. 영산문화재연구소는 3년 전 화엄사 불상을 대대적으로 연구하며 X레이 촬영을 진행했다. 화엄사 불상 속 복장유물은 대다수 도난을 당해 남은 것이 많지 않았다. 삼신불좌상도 본존상인 비로자나불상과 석가모니불 속은 이미 모두 도난당해 텅 비어 있었다. 노사나불상도 등쪽의 구멍을 통해 대부분이 사라졌는데, 뱃속에 일부 복장유물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불경서책·발원문 등 책 100여권 정도가 나왔다.

불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는 ‘시주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제목 그대로 불상을 만들기 위해 시주를 했는지를 적은 것으로 불상을 만들었던 연도부터 어떤 스님이 화엄사에 있었고, 어디에 불상을 봉안했는지 등을 기록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시주질 앞부분에 의창군 이광과 신익성이 불상 조성하는 데 큰 시주자로 참여했다고 적힌 대목이다. 의창군 이광은 선조의 여덟째 아들로 서예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며 아버지 선조의 총애를 받았던 인물이다. 신익성은 선조의 딸 정숙옹주와 혼인한 왕실의 부마다. 유 교수는 “조선시대 유달리 불교에 애정을 쏟았던 세조 이외에 숭유억불정책의 조선에서 왕실 사람의 이름이 시주자로 등장한 건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이처럼 화엄사 시주질에 왕실의 참여가 직접적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건 당시의 시대상과도 연결돼 있다. 조선은 유교국가였기 때문에 왕이나 왕비, 세자가 전면에 나서서 사찰에 불상을 만든다거나 시주자로 나설 수 없었다. 하지만 17세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승려들은 자발적으로 승군으로 전쟁에 참여했고, 당시 많은 승려가 전쟁에서 죽고, 사찰이 불타면서 불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 교수는 “시주질은 화엄사가 삼신불상이 조성된 1634년 왕실인물을 비롯한 유학자들도 시주에 참여한 것은 두 차례 전쟁을 겪으며 이전에는 불교를 배척하고 탄압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구체적인 방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왕실의 후원과 당대를 대표하는 조각승 청헌·응원·인균과 제자들이 기량을 발휘하면서 삼신불좌상은 예술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모습을 갖추게 됐다. 화려한 연꽃 대좌에 앉아 있는 삼신불좌상은 굵은 선이 중후하면서도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의 조형미를 자랑한다. 박수희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연구관은 “역사적 의미에 더해 예술·조형적 수준도 단연 돋보여 조선후기 대표 불상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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