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와 비너스가 짊어진 '욕망의 무게'

아뜰리에아키 박효진 개인전 '밤의 정원'
은밀한 욕망 꿈틀대는 밤을 배경으로
조화 짊어진 인체상·청화백자 빚어내
허망한 아름다움 좇는 인간욕망 실체
조각서 사진으로 확장한 신선한 실험
  • 등록 2020-02-10 오전 12:35:00

    수정 2020-02-10 오후 8:28:49

박효진의 조각작품 ‘잃어버린 낙원-잿빛’(Paradise Lost-Ashy·2020·왼쪽)과 ‘비너스-찬란’(Venus-Floridity·2020). 신이 내린 비주얼을 가졌다는 다비드와 아름다움의 세계를 평정한 비너스가 산만한 꽃무더기를 이고 지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밤이 내렸다. 한낮에 철저히 감춰뒀던 욕망이 꿈틀한다.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바삐 움직이는 손이 있다. 탐하려는 게 있어서다. 아름다움. 아니 그 정도로는 약하다. ‘절대적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인간이 가진 욕망의 한계를 시험대에 올릴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하나씩 불러들인 그들의 형체가 드러난다. 신이 내린 비주얼이란 다비드가 먼저 보인다. 성서가 쓴, 적의 장수 골리앗을 돌팔매로 쓰러뜨린 그 청년 영웅이 아닌가. 이탈리아 천재예술가인 미켈란젤로가 비로소 그 형상을 더듬어냈더랬다. 다음은 비너스. 이번엔 그리스신화다. 아름다움의 세계를 평정한, 사랑과 풍요의 상징 그 자체다. 인체에 버금가는 절대미도 있다. 청화백자다. 백자의 정수에 눈이 시린 푸른 안료로 유토피아를 그려 넣은, 들여다보다 빠져버릴 듯한 미감의 극치.

박효진의 사진작품 ‘행운의 물건’(Fortune’s Favour). 조각작품을 완성한 뒤 직접 카메라로 촬영해 제작한 가로 280㎝의 사진작품이다. 자세히 살피기 전엔 회화로 보인다. 작가가 빚은 도자기에 꽂은 가짜꽃, 붓고 뿌린 끈적한 안료, 배경으로 삼은 까만 천 등, 극적인 장치가 낸 효과 덕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데 말이다.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던가. 역시 이들에게 가해진 형벌 같은 대가가 있었으니, 엄청난 무게다. 그 하중을 머리에 얹고 어깨에 짊어지라 한 거다. 그것도 아름다움을 겨뤄야 하는 꽃무더기로. 아름다운 자, 그 무게를 감당하란 뜻인가.

흡사 꿈꾸는 듯한 이 복잡다단한 스토리는 작가 박효진(46)의 손끝에서 나왔다. 조각으로 빚고 사진으로 찍어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아뜰리에아키에 마련한 개인전 ‘밤의 정원’에 내놨다. 조각 4점, 사진 10점을 세우고 건 이번 전시는 국내 개인전으론 13년 만이란다. ‘밤과 욕망, 아름다움과 무게, 이게 다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 했다면, 이제 눈앞의 실체가 대신 말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작가 박효진이 서울 성동구 아뜰리에아키서 연 개인전 ‘밤의 정원’에 건 조각작품 ‘비너스-찬란’(Venus-Floridity·2020) 옆에 섰다. 꽃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안료를 두고 작가는 “욕망을 탐하는 인간의 눈물과 좌절일 수 있다”고 말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눈물’ 흘리는 가짜꽃 한 다발 지고 인 조각상

“인간의 욕망에 대한 얘기다. 그 욕망이 좇는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옮겨놓으려 했다.” 전시개막을 앞두고 만난 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정리했다. 결국 사람이 끝없이 탐하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내보이려 했다는 거다. “인간 욕망의 기준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과물이 뭔가를 물었더니 다비드와 비너스, 청화백자가 앞서 나오더라”고. 맞는 말이다. 외모로 감히 다비드와 비너스를 능가할 수 있겠으며, 부와 가치로 청화백자를 넘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이들에게 굳이 ‘꽃무더기’란 숙제를 안겼을까. 힌트는 ‘가짜꽃’이다. 다비드와 비너스에게 잔뜩 지운 그 꽃은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조화”라니까. 그 위에 걸쭉하고 끈적한 레진을 붓고 뿌려 눈물인 듯 핏물인 듯한 ‘장치’까지 해뒀다. 박 작가는 이를 두고 “꽃이 피어나는 게 아니라 욕망이 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화려한 꽃이 시선을 모으지만 사실 생명이 없는 꽃이다. 다양한 색까지 흘렸지만 꽃을 빛내지도 못한다. 왜? 좌절이고 절망일 수 있으니까.”

박효진의 조각작품 ‘비너스-석양’(Venus-Sunset·2020)을 옆에서 바라봤다. 어깨에 지운 꽃무더기에서 뚝뚝 떨어지는 안료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물론 그 꽃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전시작 중 단번에 눈길을 끄는 조각 ‘잃어버린 낙원-잿빛’(Paradise Lost-Ashy·2020)이다. 회색톤의 근육질 다비드가 회색톤의 꽃무더기를 머리에 얹은 채 버티고 선 작품. 유일하게 ‘흑백’인 이 조각상은 핏빛같이 붉은 꽃무더기를 어깨에 올린 ‘비너스-석양’(Venus-Sunset·2020), ‘비너스-찬란’(Venus-Floridity·2020)보다 되레 강렬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밤인가. “욕망이 극대화되는 시간이다. 낮에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은가. 밤에는 몽환적이고 감상적이 되고.” 한마디로 낮에는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던 바람을 욕망이 절정에 달한 밤에는 주문할 수 있다는 건데. “맞다. 가장 은밀한 지점을 들춰낸 거다.”

박효진의 조각작품 ‘잃어버린 낙원-잿빛’(Paradise Lost-Ashy·2020)을 옆에서 바라봤다. 전시작 중 유일하게 모노톤이면서 작가가 직접 빚은 꽃무더기를 다비드의 머리에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특이한 점은 이들 조각작품을 모델로 삼은 사진작품인데. 작가는 원체 조소를 전공한 ‘조각가’다. 그런데 어쩌다 사진작업까지 하게 됐을까. “우연히 튀어나왔다. 부지런을 떠는 과정에서 건진 거다.” 시작은 조각작업 뒤 으레 남기는 자료사진이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자체가 조각가의 엉뚱한 ‘필모그래피’가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거다. 그렇다고 고가의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도 아니다. “그저 화소수가 높은 일반 카메라를 쓴다”며 웃는다. 굳이 신경쓰는 게 있다면 조명 정도라고 할까. 아, 한 가지가 더 있다. 사진작품의 배경인 ‘까만 천’ 말이다. 영상제작에 주로 쓰는 블루스크린의 검정판이라고 할까.

박효진의 사진작품 ‘환희’(Rejoicing·2020)와 ‘지혜’(Wisdom·2020)가 서울 성동구 아뜰리에아키서 연 개인전 ‘밤의 정원’에 나란히 걸렸다. 모두 조각작품을 완성한 뒤 직접 카메라로 촬영해 제작한 것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데 사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이 ‘까만 천’이 작품세계를 통째 바꿔버리게 된다. ‘밤의 정원’이란 시리즈가 만들어진 게 이때부터니까. 덕분에 박 작가의 작품은 동명의 ‘페어’를 이룬 게 많다. 조각작품과 그를 촬영한 사진작품으로. 이 실험에 먼저 주목한 이는 세계적인 슈퍼컬렉터 세레넬라 시클리티라다.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미술프로젝트 ‘코리안아이’의 대표이기도 한 그이가 박 작가를 ‘주목할 한국 여성작가’로 꼽은 건데. 그 계기로 박 작가의 작품은 2019년 런던 사치갤러리서 연 ‘코리안아이 2020’의 특별전 ‘스타트×롤랑 뮤레’에 초청받기도 했다.

박효진의 조각작품 ‘환희’(Rejoicing·2020)와 사진작품 ‘환희’(Rejoicing·2020). 작가의 작업은 조각작품과 그를 촬영한 사진작품으로 최종적인 완성을 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입체·평면작업 동시에…새로운 실험

화려하다. 작품 한 점 한 점의 빛깔이 말이다. 하지만 공허하고 쓸쓸한 화려함이다. 창조가 아닌 탓이다. 다비드고 비너스고, 청화백자와 조화까지 이미 세상에 나온 기성의 형태니. 하다못해 멀리서 볼 땐 회화인 듯한, 아니 회화를 모방한 사진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바로 여기에 박 작가의 핵심이 있다. 인간이 탐하는 아름다움이란 게 참 보잘것없는 욕망의 바닥이란 거다. 아무리 애써도 닿을 수 없는 그저 허무한 아름다움에 불과하니.

엄밀히 말하면 ‘조각·사진전’이다. 입체와 평면을 동시에 해낸 작가의 역량이 뚜렷한. 그럼에도 박 작가의 정체성은 분명하다. “나는 조각가”다. 사진은 조각가의 고민에서 나온 파생물일 뿐 “조각을 어찌 확장하느냐의 문제를 풀기 위한 충실한 도구”란 거다. 그렇다면 이 도구가 끝까지 조각가를 지킬 것인가. “6개월 전 작업보다 어제 작업이 신선하다. 연륜이 더해졌겠지만 사실 기술문제가 크더라. 그 고리를 풀면서 업그레이드 하고 방향을 잡아간다.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시도를 할 거다.” 새로운 실험의 ‘조각’이 밤의 욕망처럼 끊임없이 꿈틀댈 거란 행간이 읽혔다. 전시는 3월 7일까지.

박효진의 조각작품 ‘비너스-석양’(Venus-Sunset·2020)과 사진작품 ‘비너스-석양’(Venus-Sunset·2020). 인간이 탐하는 아름다움이란 게 참 보잘것없는 욕망의 바닥이란 것을 작가는 기성의 조각상과 가짜꽃 무더기, 회화 같은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전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아뜰리에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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