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마피아 채권까지 담아?…'국제 호구'된 한국형 헤지펀드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투자 의혹'에 비상
"마피아 자금줄 유령회사에 투자" 英언론 의혹 제기
범죄수익 환수땐 투자금 묶일 수도
하나銀 "확인된 바 없다"
  • 등록 2020-07-20 오전 12:30:00

    수정 2020-07-20 오전 12:30:00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한국형 헤지펀드(전문투자형 사모펀드)가 국제금융시장에서 ‘봉’이 된 사례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가 국제 다단계(폰지) 사기에 휘말리더니 하나은행이 팔아온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는 국제 폭력조직 마피아 자금줄인 특수목적기구(SPV)에 투자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사실이라면 수개월째 줄다리기 중인 판매사·투자자 간 사적 화해 역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이탈리아 현지 범죄수익환수 조치로 국내 펀드 가입자 투자금이 영영 묶일 수 있어서다. 그동안 고수익만 보고 제대로 된 실사나 안전장치 없이 무분별하게 대체투자에 나섰던 것에 따른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PB센터서 판매…설정잔액 1500억원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지난 3월 환매중단된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의 자금이 현지 신흥 마피아 ‘드랑게타’와 연계한 유령회사 채권에 들어갔는지 진상을 파악 중이다. 금융당국 역시 사건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하다면 검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번 의혹은 외신 보도에서 시작됐다. 지난 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탈리아 상업은행 방카제네랄리와 연기금,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들이 드랑게타 연계 유령회사 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하면서 해당 채권을 매입한 주체로 한국 연기금(a pension fund in South Korea)을 콕 찍었다.

이 기사에 국내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은 시쳇말로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당장 지난 3월부터 차례대로 환매가 중단되거나 중간 배당 지급이 지연되고 있는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가 진앙으로 지목됐다. 실제 해당 펀드에 연기금이 투자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상품은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에 청구하는 진료비를 유동화한 채권(note)을 기초자산으로 만들어진 펀드였다. 유동성이 필요한 의료기관으로부터 매출채권(외상매출금 등)을 할인 매입하고 이를 지자체로부터 전액 상환받아 차익을 남기는 구조다. 이런 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역외 뮤추얼펀드를 총수익스왑(TRS)으로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하이자산운용, 아름드리자산운용, 현대자산운용, 포트코리아자산운용, JB자산운용이 설정해 하나은행이 2017년~2019년 PB(프라이빗뱅킹)센터를 통해 판매했다. 설정잔액은 1500억원 가량이다. 목표수익률은 연 5%대였다. 위험등급은 매우 높은 위험을 의미하는 1등급을 책정했다. 만기는 2년 1개월(또는 3년 1개월)이지만, 설정일로부터 일정 기간(13개월) 뒤 조기상환이 가능하다.

2005년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남부 지역에서 체포된 드랑게타 조직원 (사진=AFP)
최초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가 환매 중단되기 시작한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알려졌었다. 사실상 이탈리아 현지 보건체계가 무너지면서 채무자인 지방정부가 제때 상환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유였다. 이탈리아 내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2월 말부터 급증하더니 이날 현재 25만명(누적 기준)에 육박한다.

하지만 하나은행이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에 맡긴 실사에서 단기채권 위주라던 운용계획과 달리 장기채권이 편입되고 시장할인율보다 높은 가격에 채권을 매입한 정황이 파악됐다. 여기에 원금상환이 최장 2026년까지 미뤄지면서 유동화 노트별 자산 가치는 투자원금 대비 39~58%로 줄어들었다.

원금 손실을 보게 된 일부 투자자들은 ‘설계부터 엉터리였다’면서 하나은행이 제시한 가지급금(투자원금 50%) 수령 등 보상안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계약취소를 위한 사전 조치로 금감원에 조사를 의뢰했고 이달 중 형사고소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와중에 ‘마피아 채권 혼입’(섞어 넣음) 의혹까지 터진 것이다. 그동안 하나은행은 실사 결과를 토대로 청구대상이 아닌 채권이 기초자산에 섞여 있었던 것은 인정해 왔다. 그러나 해당 채권을 누가 발행했는지, 어떻게 떠안게 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투자자를 법률대리하는 임진성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당해 연도 예산 한도를 초과해 발생한 매출채권’(만기가 길고 회수가 불확실함·Extra Budget Receivables) 가운데 마피아 관리하에 있는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FT는 방카제네랄리가 언스트앤영(EY) 자문을 받고 마피아 채권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이탈리아 헬스케어펀드 또한 EY를 자문인으로 고용했기 때문에 의구심은 커졌다.

이탈리아 경찰이 2016년 드랑게타 조직원 2명을 검거해 압수한 무기 (사진=AFP)
“언어장벽·현지사정 몰라 리스크 노출”

하나은행 측은 “확인된 바 없다”면서 섣부른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탈리아 의료비 관련 채권이 연간 최소 20조원 어치(약 34조원 추정)가 발행된다”면서 “이 중 마피아 채권을 섞어 넣은 유동화 노트에 투자했을 가능성은 확률상 높지 않다”고 말했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5년간 100조원 규모 시장이 형성됐다고 치면 같은 기간 찍어 낸 마피아 채권은 1조3000억원이니 산술적으로 1.3%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이어 국내 운용사들이 TRS계약 상대방인 신한금투, 이 펀드를 국내에 들여온 미국 운용사 CBIM(Cross Border Investment Management), 현지에서 매입·회수 업무를 하는 ESC그룹으로부터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 다만 전례를 비춰볼 때 이들 회사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은 채 서로 책임을 미룰 개연성이 높다.

금감원은 일단 진행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연내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 종합검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이때 마피아 채권 이슈도 들여다보리라고 전망한다. 금감원 일반은행검사국 관계자는 “적정 만기 이상 채권을 사들였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 “마피아 채권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한 상태이나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만약 마피아 채권을 펀드에 편입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금융공학을 악용한 자금세탁에 일조한 셈이어서 한국형 헤지펀드는 국제적 망신살을 뻗치게 된다. 높은 수익률을 좇으면서 제대로 된 검증이나 안전장치 없이 대체투자를 해온 관행이 전 세계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범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서영숙 숭실대 교수는 “해외 대체투자를 하려면 현지 업체들이 제시하는 자료뿐만 아니라 국내 컴플라이언스에 들어맞는 수준으로 검증해서 사전에 위험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이탈리아는 언어 장벽에 더해 현지 사정을 필요 시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커서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는 국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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