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나랏빚이 과도하게 불어나지 않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재정준칙을 발표해 재정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재정준칙이 재정 안전판으로서 제구실을 못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며 정부에 재정지출 확대를 압박하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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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에 국가채무는 1070조3000억원, 공무원연금·군인연금충당부채는 10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국가채무는 수입보다 지출이 늘면서 재정적자가 급증한데 따른 결과다. 연금충당부채는 국가가 공무원 재직자·퇴직자에게 앞으로 지급해야 할 연금액을 현 시점에서 추산한 재정지출 추정액이다.
기재부의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올해 846조9000억원(GDP 대비 43.9%)에서 2022년 1070조3000억원으로 증가한다. 59년 만에 1년에 4차례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올해 국가채무는 급격히 늘었다. 이같은 추세로 가면 2022년 국가채무는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660조2000억원)보다 5년 새 410조원 넘게 급증한다.
국가채무에 포함돼 있지 않지만 연금부채도 재정당국이 고민하는 재정부담 중 하나다. 지난해 연금충당부채는 944조2000억원(공무원연금충당부채 758조4000억원, 군인연금충당부채 185조8000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이같은 재정 상황을 감안해 29일 재정준칙을 발표할 예정이다. 작년 12월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 재정준칙 도입을 시사한 뒤 9개월 만에 마련한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걱정과 고민이 어느 부서보다 많다”며 “9월말 (재정준칙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재정준칙, 실효성 불투명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비율이나 재정수지 적자에 대한 상한선 등을 정해놓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방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한국, 터키를 제외한 34개국을 비롯해 전 세계 92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29일 발표 예정인 재정준칙에는 △재정수지·국가채무 등의 수치를 시행령으로 규제하는 방식 △경기침체, 코로나19 등 재해가 있을 경우 예외 규정 적용 △의무지출 도입 시 재원 확보 방안을 함께 마련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적용하되 유예 기간을 두는 방안 등이 담길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가 재정준칙을 만들더라도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불투명하다. 기재부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재정준칙”이라는 입장이지만, 예외 규정을 뒀는데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규제여서 강제력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정치권에서는 재정준칙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시점에 재정준칙을 만들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과감한 확장재정정책”을 주장했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인천대 경영학부 교수)은 “세상에 좋은 빚, 착한 빚은 없다”며 “국가 주도로 과도하게 재정을 남발할수록 미래세대와 기업의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기백 한국재정학회장(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은 “지속가능한 연금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자 상태인 공무원·군인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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