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투자자로 꼽히는 존 템플턴 경이 날린 경고다. 월가의 격언으로 자리 잡은 이 말은 주로 자본시장에 흥이 달아올랐을 때 회자된다. 이번엔 다르다고 믿고 흥청망청 즐기다 거품이 꺼지고 호되게 당하면서 결국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다’는 착각이 가장 비싸면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다.
위기도 마찬가지다. 과거 기준에 빗대 “이번엔 다르다”고 착각했다가 준비 없이 당했다. 기업들이 빚으로 파티를 벌이다 터진 IMF 외환위기, 벤처들이 몰려드는 투자금으로 잔치를 하다 맞은 2000년대 초 IT버블 붕괴, 미국 부동산 급등을 타고 만들어낸 금융권의 파생금융상품이 터지면서 겪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각각 원인은 달랐지만 결국 위기로 귀결됐다.
지금도 위기설이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과거와 많은 면에서 다르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실제로 맞는 말이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면 기업들의 재무구조는 크게 개선됐다. 1997년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은 519%에 달했지만, 올해 1분기 말 기준 코스피 상장사 부채비율은 112.36%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도 일취월장했다. 경제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외환위기 때에 비해 3배 가량 늘었고, 1인당 국민소득(GNI)은 1만3000달러대에서 3만달러 이상으로 뛰었다. 대외건전성에서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IMF 구제금융 당시 204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이제 4000억달러로 전 세계 9위 수준이고 만기 1년 미만인 단기외채도 외환보유액에 비해 1997년에는 286%에 달했지만 올해 3월에는 31.6%로 뚝 떨어진 상태다.
미·중 무역분쟁은 이제 상수가 됐고 일본의 수출규제로 불거진 한일 갈등도 쉽게 풀릴 이슈는 아니다. 여기에 점차 과격해지는 홍콩 시위가 ‘블랙스완’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중국 정부가 무력진압에 나선다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것이고 무역협상 중단, 중국 경제 경착륙, 아시아 금융시장 혼란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때처럼 전 세계가 공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관세를 올리고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가 하면 수출규제에까지 나서는 등 곳곳에서 자국 이기주의가 발현되고 있다. 금융위기 때에는 ‘멀리 가려면 함께 가자’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빨리 가겠다고들 혼자 제각각 길을 가는 상황이다.
과거 위기 때와는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이번에는 달라!’고 할 게 아니라 이번에는 다르기 때문에 간과하고 있는 부문을 보고 미리 대응해야 한다. 위기는 준비돼 있지 않았을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