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저녁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실내체육관 현장은 침묵과 탄식이 교차했다. 현대중공업 노사가 어렵게 마련한 2016~2017년 2년치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이하 임단협)에 대한 찬반투표 개표가 막바지에 이르면서다. 결국 합의안은 이날 노조원들의 반대로 부결됐다. 투표자 8804명(투표율 89.61%) 가운데 찬성 3788명(43.0%), 반대는 4940명(56.11%)이었다. 이제 다시 원점이다. 1년 7개월 마라톤 교섭 끝에 도출한 합의안 역시 무용지물이 됐다. 밀린 임단협을 마무리하고 회사 정상화를 기대했던 회사측은 크게 실망했고 하청업체들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투표결과를 들여다보면 현대중공업에서 분사한 현대로보틱스와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은 합의안에 찬성했지만 정작 중공업 본사 조합원의 반대표가 많았다. 분할 3사와 비교해 낮은 성과금에 가장 큰 불만을 가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상여금 분할 지급과 근무유연제 등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조합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년의 저조한 수주실적만으로 조선업의 몰락을 얘기하는 게 과장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중국 조선사들의 급성장이나 기술평준화 등을 감안하면 엄살로 치부하기도 쉽지 않다.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회사도 수년간의 수주절벽 여파로 올해 매출이 10년 전에 비해 60%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이다. 2만명이 북적거렸던 해양사업부는 5000여명으로 줄었다. 현대중공업은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유래 없는 호황을 누렸다. 노조는 19년간 단 한 번의 파업도 벌이지 않았다. 하필이면 회사가 어려워질 때부터 노사관계의 균열이 시작한 걸 회사만의 운영 잘못으로 생각하긴 쉽지 않다. 호황을 함께 했듯 노사 모두 협력해야만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 15년 전 말뫼에겐 눈물을, 현대중공업에겐 세계 1위 조선사의 영광을 안겨줬던 골리앗 크레인이 ‘울산의 눈물’로 바뀌지 말란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