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대란]“그래도 나는 오늘 담배를 피운다”

금연 열풍에 흡연자들 설 곳 줄어
끊을 것이냐 피울 것이냐 갈림길
"사재기한 것만 피우고 끊겠다" 많아
  • 등록 2015-01-05 오전 7:30:00

    수정 2015-01-05 오전 7:50:07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을미년 새해 첫날은 목요일이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목요일이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일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오던 길에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랜 습관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큰 딸과 아내가 잔소리다. 새해 첫날 부터 담배를 피우냐고 타박이다. 귀신같이 안다. 매년 연초마다 듣는 소리지만 담뱃값이 오른다는 소식을 들은 탓인지 아내의 잔소리가 유난히 길다. 친구에게 신년 안부전화가 왔다.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담배를 피우다 신고를 당해 경찰에서 연락이 왔단다.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 사이 남학생의 흡연율은 지난해 14.4%를 기록했다. 여학생은 4.6%다. 정부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여서 실제 흡연율은 더 높을 수 있다고 하니 딸이라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30년 가까이 담배를 피워온 애연가다. 친구는 “나부터 끊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쉰다. 아무래도 흡연 동지 한 명이 대오에서 이탈할 모양이다.

2일 회사에 출근했다. 시무식을 끝내고 옥상에 올라가니 문이 닫혔다. ‘전면 금연 실시에 따라 옥상 흡연실을 폐쇄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건물 밖으로 나가니 도로변에서 회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행인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간다. 죄인이 된 기분이다. 동료 한 명이 “담뱃세 올려도 꾸준히 피우니 우리가 모범 납세자이자 애국자”라고 우스개를 했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애국할 생각 없으니 흡연공간이나 늘려줬으면 하는 소망이다.

퇴근 후 회사 동기들과 신년 모임을 가졌다. 회사 근처 단골 삼겹살집이다. 종업원에게 재털이를 달라니 안된단다. 전에는 모르는 척 종이컵을 주더니 이젠 나가서 피우라고 싫은 소리를 한다.

“재털이 안주면 발을 끊겠다”고 뻗댔더니 그러란다. 어차피 다른 가게도 다 마찬가지여서 갈 데가 없을 거라며, 새해도 됐는데 담배 끊으시라는 핀잔까지 들었다. 전면 금연 시행으로 음식점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담배를 피운 손님 과태료 10만원, 업주는 과태료 17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2차로 간 포장마차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더니 주인이 금연이라고 막는다. 어이가 없어서 ‘포장마차도 단속하냐’고 물었더니 다른 손님들이 싫어해서 그러니 양해해 달란다.

귀가해 책상에 앉아 서랍을 열어보니 담배가 가득이다. 담뱃값 올린다는 소리에 한두갑씩 사 모은게 30갑이 넘었다. 온라인 카페와 SNS에 “사모아 둔 담배만 피우고 올해엔 기필코 끊겠다”는 흡연 동지들의 글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래 나도 이것만 피우고 담배 끊는 걸 한번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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