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재벌9세와 생계형 비즈니스

중기적합업종 지정종료로 중소업계 비상
재벌과 중소기업계 자율적 협약은 언감생심
재벌의 영세소상공인 업종 진입은 자제해야
  • 등록 2017-03-13 오전 5:00:00

    수정 2017-03-13 오전 5:00:00

[이데일리 류성 벤처 중기부장] 얼마전 가족과 함께 점심을 하러 홍대입구 부근에 있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한 한식 뷔페점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다소 지났는데도 빈자리가 없어 30여분을 기다려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깔끔한 맛과 쾌적한 실내 분위기가 입소문이 나면서 밀려드는 손님들로 성업 그 자체였다.

재벌이 식당을 운영하면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한편으로 뒷맛은 씁쓸했다. 재벌이 영세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음식점 사업에까지 뛰어들어 그들 생존을 위협하는 행태에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다. ‘현명한 소비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소비에도 ‘윤리’가 뒤따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마저 무거웠다.

이런 고민이 나만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최근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가 이슈로 다시 떠오르고 있어서다. 지난 2011년 이 제도 도입 이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품목들이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해제될 예정이어서 해당 분야에서 사업하던 중소업계는 비상이다.

당장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금형을 시작으로 된장,골판지, LED조명기구 등 모두 49개 품목이 올해안에 풀리게 된다. 나머지 62개 품목도 길어야 3년안에 중소기업적합업종에서 해제된다. 물론 적합업종 기한이 끝나더라도 품목별로 관련 대기업과 중소기업계가 상호합의를 하면 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해 기한을 연장할수 있는 여지는 있다.

하지만 적합업종이라는 ‘족쇄’가 풀리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대기업들에게 재연장은 언감생심이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3년동안 유효하고 추가 3년 연장이 가능했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분야에서 사업하던 대기업들로서는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이라는 세월을 참고 기다려 왔다.

적합업종 지정만료를 눈앞에 두고 생존을 위협받는 중소업계는 아예 강력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의원들을 중심으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 움직임에 해당부처인 산자부와 중기청은 요지부동이다. 이 제도를 법으로 만들면 미국등 다른 나라들과 통상마찰이 생길수 있다는 게 정부의 항변이다.

만약 중소기업적합업종의 재연장이나 신규지정을 대기업과 중소기업계의 자율적 협약에 맡긴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적합업종 신규지정이나 연장을 원하는 중소기업계의 요구를 재벌이 순순히 들어줄까. 적합업종 제도의 전신이라 할수 있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이후 재벌들이 보인 행태를 보면 어느정도 결과를 짐작할수 있다. 고유업종제도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고자 1979년부터 2006년까지 운영됐다. 이후 고유업종 제도가 사라지자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재벌그룹 계열사 수는 모두 477개가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생계형 소상공인업종에 진출한 계열사는 무려 387개로 81.8%를 차지했다(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특히 재벌의 외식업 확장이 두드러졌다. 삼성 SK, LG 등 한국의 대표 간판 재벌들도 예외없이 이 시기에 모두 27개 외식업 계열사를 만들었다.

재벌들이 외식업 등 영세 소상공인 업종에 무더기로 진출하는 것은 업력이 길어지면서 기하급수로 늘고있는 재벌2세,3세,4세들 탓이 크다. 재벌 후세들이 검증받지 못한 사업능력과 일천한 경험으로 손쉽게 뛰어들수 있는 분야가 ‘무주공산’격인 영세 소상공인 업종이다. 이런 재벌들의 무분별한 기업확장문화가 강화되면서 훗날 재벌 9세,10세가 넘쳐나는 시기가 오면 어찌될까. 대한민국 골목상권마다 영세상인은 자취를 감추고 재벌들의 점포로 넘쳐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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