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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가톨릭 신부들의 성추행을 파헤치던 탐사보도팀이 그동안 찾아낸 증거를 바탕으로 문제를 일으킨 신부들을 고발하는 기사를 쓰려 하자 편집장은 “신부 개개인이 아니라 교회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를 만류한다. “교회라는 체계(system)를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탐사보도팀은 성추행을 저지른 신부들을 폭로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이들의 만행을 은폐하려 한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고발하며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다.
권력에 기생해 독버섯처럼 자란 성폭력이 충격적인 민낯을 드러냈다.
앞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와 정무비서를 지냈던 김지은 씨가 안 전 지사로부터 8개월간 4번에 걸쳐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해 한국 사회를 또 다시 충격에 빠트렸다. 김 씨의 폭로는 한 달 넘게 펼쳐지고 있는 한국판 ‘미투’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김 씨가 네 차례 성폭행에도 침묵한 것은 안 전 지사의 권력 때문이었다. 김 씨 역시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기에 수행비서로서 아무 것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미투 운동으로 폭로된 성추행·성폭력의 사례는 위계와 폭력 등 지위와 힘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민기, 교수 김태훈, 감독 김기덕 등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내가 속한 세계의 왕” “절대적인 권력”이라고 표현했다. 가해자가 지닌 권력 때문에 피해를 입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가해자들도 사회적 명성에 사로잡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잘못을 저질렀음을 인정해 많은 이들을 분노케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성폭력 피해자가 국가와 사회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자신의 법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피해자 옹호와 조력 시스템이 견고하게 갖춰져야 한다”며 “2차 피해자가 발생되지 않도록 성평등과 인권교육을 촘촘하게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