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은 세계적으로 많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해다. 파리조약을 통해 2차대전이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전범의 죄를 묻는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갔다. 반면 냉전 열기는 점점 타오르기 시작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창설됐다. 소련은 핵 보유국이 됐고, 최고 히트 상품으로 자리잡을 무기 AK소총을 세상에 내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요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기존의 역사적 서술에 도전하는 새로운 문법으로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르포르타주를 써낸다. 퍼즐을 맞춰가듯 작은 조각들로 큰 그림을 만들어내는 필력이 돋보인다. 파시즘·혐오·폭력 등 인류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것들이 태동한 1947년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