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안은 470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8.7%(추가경정예산 기준) 늘어난다. 전년 대비 지출 증가율은 2008년(추경 기준 10.8%)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다.
정부는 지분 100%(기획재정부 92%·국토교통부 8%)를 보유한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에도 금융위기 후 가장 큰 규모의 현금 실탄을 장착한다. 산업 정책적 지원을 강화한다는 신호탄인데 국회 문턱을 넘을지 관심이 쏠린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정부 예산안에는 산업은행에 현금 출자를 하기 위한 예산 6000억원이 반영됐다. 산업은행이 새 주식을 발행하면 정부가 이를 사들여 은행 자본금을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6000억원 중 1000억원은 정부가 중소·중견 기업 자금 지원을 위해 조성한 ‘혁신모험펀드’에 산업은행이 재투자해야 하는 만큼 은행 증자를 위한 순수 출자액은 5000억원이다.
정부의 국책은행 출자는 통상 두 가지 방법으로 이뤄진다. 현금 출자 또는 정부가 보유한 한국도로공사 등 비상장 공기업 지분을 넘겨주는 현물(現物) 출자다. 정부가 내년 산업은행에 출자하는 금액은 현금 출자로는 미국발 금융위기 후폭풍이 불어닥친 2009년(9000억원) 이후 최대 규모다.
바젤Ⅲ 시행 일정에 따라 내년부터 은행은 ‘총자본비율’(부실 위험을 반영한 자산 대비 자기자본의 비율)을 10.5%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 비율이 10.5% 아래로 내려가면 이익이 나도 배당이나 직원 보너스 등을 제한하고, 8%를 밑돌면 금융 당국이 경영 개선을 강제하는 ‘적기 시정 조치’ 대상이 된다. 가계 대출 등 신용 팽창기에 자본을 미리 쌓게 해 신용 공급을 조절하고 은행의 부실 위험을 줄이는 경기 대응 완충 자본(최대 2.5%)을 포함할 경우 총자본비율 하한은 13%로 올라간다.
정부의 현금·현물 출자는 은행 자본금을 늘려 이 같은 자본비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다만 산업은행의 총자본비율은 올해 3월 말 현재 15.34%로 당국 규제를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같은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13.26%), IBK기업은행(14.13%)보다 자본금 사정이 낫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올해 초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을 하며 현재 산업은행의 총자본비율이 14% 선으로 내려갔다”며 “5000억원을 출자해도 15%에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국내 은행 등 금융권 대출 잔액이 1700조원을 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수익을 좇아 부동산에만 돈이 쏠려 있고 실물 경제 영역의 자동차 등 기간 산업과 설비·부품 업체, 하도급 업체 등은 자금줄이 말라 죽겠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반면 중국은 대출 자산이 우리의 7배 정도에 달하고 상당수 자금을 공산당 의지에 따라 산업 지원에 쓰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시점에서 중국과의 경쟁에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려운 만큼 금융 측면에서도 최소한의 산업·실물 경제 지원 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관건은 국회 심의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예비 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 심사, 본회의 심의·의결 등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그간 대우조선해양 등 주요 구조조정 기업 지원에 따른 국책은행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별도의 국회 승인이 필요 없는 현물 출자를 주로 활용한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국회 문턱을 넘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산업은행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예산안 심사를 시작하기 전이고 인터넷 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한 은산 분리 완화 등 위원회 현안이 많아서 앞으로의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