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사채 등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을 쓸어 담으며 급성장했던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펀드가 확대되면서 메자닌 시장이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규 메자닌 투자가 급감하면 이미 발행된 전환사채 중 적잖은 물량이 차환(기존 사채를 갚기 위해 신규 채권을 발행하는 것)하지 못하고 주식으로 전환돼 시장에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른바 전환사채 발 ‘신주(新株) 폭탄’의 위험이 잠재한 셈이다.
이 같은 우려가 당장 현실화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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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금융 정보 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라임 사태가 터진 지난해 10월부터 연말까지 코스닥시장 상장 기업이 발행한 전환사채 규모는 1조116억원에 그쳤다. 전 분기(7~9월)보다 15.2%(1814억원) 급감한 것이다. 1년 전 같은 기간보다도 13.3%(1551억원) 줄었다.
작년 코스닥 상장사의 전환사채 발행액은 라임 사태 전까진 매 분기 1조2000억원 안팎에 육박했다. 2018년엔 전년 대비 60%(2조원)나 늘어난 5조25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정부가 펀드 자산의 절반 이상을 코스닥 상장기업이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코스닥 벤처펀드’를 도입한 것도 전환사채 투자 열풍이 분 원인”이라고 했다. 투자 과열 양상을 빚자 만기 때까지 이자를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제로(0) 금리’ 전환사채에도 돈이 몰렸다. 코스닥 상장사가 2018년 발행한 전체 전환사채의 27%(1조4260억원), 작년 발행액의 20%(9532억원)는 만기 보장 수익률(만기 이자율)이 0%였다.
하지만 라임운용의 부실 투자 논란이 일며 사정이 달라졌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메자닌이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해 가급적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안정적인 기업의 전환사채만 투자하고 있다”며 “라임 사태가 시장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이라고 전했다.
코스닥기업 자금 경색·주가 하락 우려↑
문제는 일차적으로 메자닌 발행·유통시장 위축으로 인해 코스닥 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에프앤가이드 통계를 분석해 보면 코스닥 상장사 5개 중 1개꼴인 18%가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조차 내지 못하는 ‘한계 기업’이다. 이런 회사를 중심으로 자금 경색이 심해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너나 할 것 없이 발행한 전환사채의 만기가 올해부터 속속 도래하며 사채 발행 기업의 재무 구조 악화, 주가 하락 등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기업의 올해 전환사채 만기 도래 금액은 1조8978억원(만기 전 상환·주식 전환 미반영)이다. 2021~2022년은 이 규모가 매해 4조원대에 이른다.
만약 한계 기업 등이 만기 때 회사채 신규 발행 등을 통해 기존 빚을 갚지 못하면 투자자도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투자금 회수에 나서야 한다. 전환사채는 요즘처럼 시장이 부진해 사채 발행 기업의 주가가 내리면 규정상 발행 당시 정한 주식 전환 가격을 최대 30%까지 하향 조정하거나, 회사 정관으로 정할 경우 주식 액면가까지 낮출 수 있다. ‘땡처리’ 신규 발행 주식이 시장에 쏟아져 주가 추가 하락을 부추길 수 있는 셈이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까진 전환사채 시장 규모가 크게 줄지 않아서 정책 대응을 잘하면 시장 자체가 무너지는 위기까지는 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메자닌의 가장 큰 문제는 99%가 투명성이 낮은 사모(私募) 방식으로 발행돼 편법·불법 이용 우려가 있다는 점인데, 사채 발행 기업의 신용도를 분석할 수 있으면서 공모보다는 발행 부담이 적은 사모와 공모 중간 단계의 시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