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사법부 안정이냐, 국민불신 해소냐…김명수 대법원장의 '고뇌'

김 대법원장 지시로 2·3차 조사…전임 대법원장 겨냥 의혹 뒷말도
검찰 고발·관련자 엄중조치 등 법원 안팎에서 거센 압박
檢 강제수사 가능성 높지만 법원 내홍 우려도 적지 않아
김명수 대법원장 "모든 방안 검토한다" 최종결정 주목
  • 등록 2018-05-31 오전 5:30:00

    수정 2018-05-31 오전 5:30:00

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한광범 기자]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인 이탄희 판사가 지난해 3월 “법원행정처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할 때만 해도 의혹제기 수준에 머물렀다. 지난해 4월 진상조사위원회의 첫 조사에 이어 올해 1월 추가조사위가 2차 조사를 했지만 모두 “판사 블랙리스트 없다”는 취지의 조사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끊임없는 의혹 제기에 3차 조사단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25일 확연히 다른 결과를 내놨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주요 사건의 재판결과를 조정하려 했고 대법원 정책에 부정적인 판사들에 대한 사찰을 시도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법부가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한 의혹으로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검찰 등 공권력을 통한 강제수사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 내부에선 사법부가 검찰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 내홍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어떻게든 자체적으로 해결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명수(59·15기) 대법원장은 고심 속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비대법관 출신 대법원장의 ‘자체개혁’

3차 조사가 이뤄진 것은 기존 2차 조사에선 행정처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채 저장된 410개의 문서들을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먼저 2차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대국민 사과와 인적쇄신을 하면서도 다시 3차 조사단(특별조사단)을 재조사에 나서도록 했다.

지난해 9월 취임한 김 대법원장이 이처럼 2차와 3차 두차례에 걸쳐 진상조사를 지시하자 법원에서 여러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며 임명한 김 대법원장이 전임 대법원장 시절의 핵심 인사들을 겨냥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관 출신이 아닌 데다 진보성향의 법관모임인 인권법연구회 1·2대 회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기존 대법원장들과 비교되는 점이 많았다.

2차 조사결과 이후 인적쇄신은 과감했다. 당장 행정처장을 김소영(53·19기) 대법관에서 부임 7개월 만에 안철상(61·15기) 대법관으로 교체했다. 2월 정기인사에서 진보성향 판사모임인 인권법연구회나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등 주요 보직에 대거 오르면서 ‘김명수식 개혁 시동’과 ‘코드 인사’라는 엇갈린 평가가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에서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이번 사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등 외부의 개입에는 완강히 반대하며 법원 자체적인 개혁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3차 조사결과로 법원 안팎의 비난여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김 대법원장도 자체개혁 원칙에서 사실상 한발 물러났다.

민변과 사법농단 피해자단체 관계자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협상 카드 사용과 관련해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檢수사 가능성 높지만 “법원 자체해결” 목소리도

김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특조단의 추가조사나 검찰 수사 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특조단은 재판거래 및 판사사찰 정황에 대해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려는 시도들”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형사상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의혹 관련자들의 명백한 범죄 혐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재판거래 사건 당사자를 비롯해 일선 판사, 정치권 등에서 진상규명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계속 미온적인 대처를 하면 현 대법원 수뇌부도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결국 검찰 수사가 진행될 거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성훈)에는 이미 이 사건에 대한 여러 개의 고발 건이 배당된 상태다. 검찰은 대법원 측에서 어떤 식으로든 의사를 밝히면 바로 수사에 나설 태세다.

다만 사법부가 강제수사를 받게 되면 당초 ‘자제 해결’을 주장했던 현 대법원 수뇌부에 대한 판사들의 불만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서울 소재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내부 일을 검찰에 맡긴다면 사법부 전체가 흔들린다. 검찰도 함부로 수사를 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문을 열어주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일단 한번 열어두면 검찰에 우리가 끌려갈 거다. 처음이 어렵지 두번째는 쉽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 뿐만 아니라 (재판거래 의혹 사건에 관여한)전·현직 대법관들까지 수사를 받게 된다면 그 파장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으면서 사법개혁의 방향에 맞는 대책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 대책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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