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전화 한통이면 만사형통?” 백종원 신드롬의 그늘

정용진·함영준과 인맥 활용, 농어촌 ‘해결사’ 등극
대중적 호감도 상승세, 대권 후보 거론되는 해프닝
농가 상생 순기능은 ‘글쎄’…정책효과 판단 신중해야
  • 등록 2020-06-24 오전 1:00:00

    수정 2020-06-24 오전 9:41:15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전국 농어촌과 골목상권을 누비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주가가 연일 상승세다. 대기업 총수와의 전화 한 통으로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농수산물을 팔아치우는 ‘사이다’ 같은 모습에 대중은 환호하고 있다. 백 대표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호감도는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차기 대권후보를 묻는 질문에 “백종원 같은 분은 어떠냐”고 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종원 신드롬’의 이면에 깔린 그늘은 생각보다 짙고 깊다. 백 대표가 해결사로 불리고 있지만 우리 농어촌의 문제가 단순히 전화 한 통화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어서다. 성공한 외식사업가, 방송인으로서 백 대표의 선의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경우 기존 농어촌 정책의 절차와 진정성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이사가 지난 2018년 열린 국정감사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백 대표는 이날 국정감사에서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쿡방에서 시작한 방송, 농어촌·골목으로


‘쿡방(요리하는 방송)’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한 백 대표가 농어촌 해결사의 이미지를 갖게 된 계기는 지난해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의 인맥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상품성이 낮은 일명 ‘못난이 감자’ 처리에 애를 먹던 농가를 찾은 백 대표는 정 부회장에게 직접 전화해 구매를 요청했다. 정 부회장이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실제 30t을 사들이면서 화제가 됐다.

백 대표는 올해 4월에도 정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남 못난이 왕고구마 300t 구매를 성사하기도 했다. 해당 감자와 고구마는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이마트(139480)를 통해 시중 가격보다 저렴한 수준에 판매했다.

이달에는 다시마 소비 촉진을 위해 함영준 오뚜기(007310) 회장과의 인맥을 활용했다. 백 대표가 함 회장과 전화 통화에서 완도 지역 다시마 재고 처리를 호소하자 오뚜기는 라면에 들어가는 다시마를 1개에서 2개로 늘린 상품을 내놓으며 화답했다.

우리 농산물 소비에 대한 백 대표의 관심은 꾸준하다. 지난해 양파가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폭락하자 자발적으로 레시피(조리법)를 소개하고 소비를 독려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에도 돼지고기나 마늘 등 공급대비 수요가 부진한 상품에 대해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는 등 소비 촉진 활동을 지속하는 중이다.

이마트가 판매한 ‘못난이 왕고구마(왼쪽)’와 다시마를 두개 넣은 오뚜기의 오동통면 제품 사진. 이마트·오뚜기 제공
◇ ‘키다리 아저씨’만으로는 문제 해결 한계


대기업 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십, 수백t의 물량을 사게 하고 이를 시장에 내놓는 백종원식 소비 촉진 방안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재고 처리에 애를 먹는 농어민들을 도우면서 소비자들은 싼값에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어 ‘착한 소비’로도 불린다.

코로나19 확산에 일부 농가들이 판로가 막히자 최문순 강원도지사 등 지자체장들이 직접 농산물 판매에 나선 것도 착한 소비 운동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착한 소비가 반드시 긍정적 효과만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키다리 아저씨’만으로 소비자와 농가 상생을 도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백 대표가 못난이 감자 30t을 팔았던 지난해말에는 고랭지 감자 생산이 크게 늘면서 도매가격이 전년대비 반토막 났던 시기다. 이때 대형 마트를 통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자가 시중에 유통되면서 공급 부담을 키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고구마나 다시마 등 다른 농식품 또한 마찬가지다. 백 대표의 도움으로 재고물량을 처리한 농가에게는 감사한 일이지만 정상 유통 경로로 납품한 농가는 오히려 그만큼 고객을 잃은 격이 됐다.

기존 유통 절차를 뛰어넘는 공급 방식도 농가 상생과는 거리가 멀다. 통상 농가가 재배한 농산물은 상품화·유통을 처리하는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와 도소매상 등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규격에 맞는 안전한 농산물을 선별하고 시세를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구매력이 크고 고객도 많은 몇몇 대기업 중심으로 농산물을 직접 구매해 단독으로 시중보다 싼 가격에 공급한다면 시장 질서를 흩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11일 소비자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 정책은 정부의 몫, 근본 수급대책 필요


농산물 수급 안정은 수요와 공급을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 예측시스템에서 나온다. 작물 재배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 변화를 통해 생산량을 추정하고 적정 수량을 공급케 하는 것이 주요 과제다.

지난해 양파와 마늘 등은 예상보다 우수한 작황으로 풍작을 맞아 평년대비 공급량이 쏟아지면서 가격이 폭락한 것은 예측이 실패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농산물 수급 불안이 나타날 경우 정부 수매나 재배면적 조절 등 대처 수단도 있다. 올해도 마늘 공급과잉이 예상되자 올초 재배면적을 조절한데 이어 4만여t을 수매 등으로 시장 격리조치하는 등 즉각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인맥을 활용한 백 대표의 화끈한 일처리가 큰 호응을 받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 수립은 정부의 몫이다. 방송에서 나타나는 백 대표의 솔루션은 임시변통일 뿐이란 얘기다.

정부도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해 정책 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지난해 취임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농산물 수급 안정을 꼽고 관련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김 장관은 “우리 농산물의 안정적인 수요야말로 생산과 가격 관리의 기본이자, 수입 농산물과 차별화할 중요한 전략”이라며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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