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돼야 고향 갑니다"..설마저 잊은 노량진 학원가

노량진 공무원학원들 "설 특강 벌써 마감"
대학도서관도 취업 준비생들로 '북적'
  • 등록 2013-02-08 오전 8:00:00

    수정 2013-02-08 오전 8:00:00

6일 오후 노량진 고시촌의 모습. 설을 사흘 앞둔 노량진 고시촌은 연휴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취업준비생들로 붐볐다.
[이데일리 이정혁 기자]“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고향에 내려갈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니 벌써 2년째 집에 안 내려갔네요.”

노량진 고시촌에서 만난 9급 순경 공채 수험생 박모(28)씨는 당장 다음 달에 치르는 경찰 시험 때문에 이번 설은 대방역 근처에 마련한 고시원에서 혼자 보내기로 했다. 박 씨의 부모님은 고속버스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청주에 산다. 하지만 박씨는 4년제 대학까지 졸업하고도 여태 취업에 실패한 탓에 부모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 명절에도 고향갈 생각을 접은 지 오래다.

박 씨는 “일단 무조건 합격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다”며 “돌아오는 추석에는 꼭 경찰이 돼 가족과 명절을 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설 연휴 짧은 게 오히려 다행”..공무원학원 설 특강 ‘마감’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사흘 앞둔 6일. 노량진 고시촌에는 공무원학원들의 ‘주말특강’ 전단지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설 연휴기간 동안 열리는 특강들이다. 노량진에서 만난 20~30대 취업 준비생들은 “예년보다 설 연휴가 짧아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노량진의 한 공무원학원 앞에서 만난 이모(26)씨는 “집이 수원이지만 설에도 내려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 씨는 설 연휴동안 학원에서 개설한 단과반 특강을 들을 계획이다. 특강이 없는 설 당일에는 학원 자습실이나 독서실에서 공부할 생각이다.

이 씨처럼 명절 연휴에도 고향을 찾지 않는 취업 준비생들 때문에 노량진 공무원학원들에게 설은 또다른 성수기다. 노량진에서 가장 큰 공무원학원인 공무원단기학교의 ‘7·9급 공무원 설 특강’은 이미 오래전에 전 과목이 마감됐다.

공무원단기학교 관계자는 “설에만 특강형식으로 강의하는 국어와 행정법, 한국사 등 5개 과목의 정원 2000명이 모두 꽉찼다”며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다보니 수험생들이 설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공부에 매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설에도 노량진 고시촌을 떠나지 못하는 취업 준비생들로 호황을 누리는 건 학원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커피 전문점과 식당도 연휴지만 쉬지 않는 곳이 많다. 노량진 고시촌 한 복판에 위치한 A커피 전문점 관계자는 “평일 오후에도 각종 공무원 수험생들로 100석의 자리가 금방 동난다”며 “평일처럼 몰릴지는 모르겠지만 설 당일에도 가게 문을 열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A커피 전문점에는 행정법과 형법 등 공무원 시험 관련 서적을 올려놓고 공부하는 취업 준비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자신을 늦깎이 9급 순경 공채 준비생이라고 소개한 박모(30) 씨는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는 취업난이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주변 고시생들이 모두 올해까지만 노량진에서 설을 보내겠다는 각오로 공부 중”이라고 귀뜸했다.

대학도서관도 취업준비생들로 북적

노량진 고시촌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인 숭실대학교 도서관. 방학인 이날도 학생들은 토익이나 두꺼운 상식책을 펴놓고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올해 이미 졸업을 했지만 취업에 실패해 매일 도서관을 찾고 있다는 김모(29)씨는 “집에 가고 싶어도 친척들이 취직여부를 물어 볼까봐 못 내려가겠다”며 “취업 준비생에게 명절은 피하고 싶은 날”이라고 토로했다.

이 대학 3학년 이모(25)씨도 “취업 준비에 학년이 어딨느냐”며 “이번 달 토익시험이 20일도 채 남지 않아 설에도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준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방학은 물론 휴일 구분없이 도서관을 찾다 보니 숭실대 도서관은 설 연휴기간에도 평일과 다름없이 개방한다. 설 당일에는 지하에 있는 열람실을 운영할 예정이다.

숭실대 캠퍼스에서 만난 한 교수는 “학생들이 설 연휴에도 학교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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