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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매달 정해진 품목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재래시장, 편의점 등지에서 현장 물가조사를 실시한다. 전국 각지의 조사원들이 두 눈으로 확인한 가격이 물가통계의 기초자료다. 통계청은 이를 바탕으로 매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발표한다.
문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역대 최저수준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체감물가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통계청 물가상승률과 한국은행이 조사하는 소비자물가인식과의 차이는 지난 8월 2.1%포인트로 6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정부는 디플레이션(경기침체로 물가가 장기간 하락하는 현상)을 걱정하는데 소비자들은 “물가가 너무 올라 장보기가 두렵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안 와 닿는 0%대 저물가 행진…조사 어떻게 할까
소비자물가는 올해 1월부터 0%대를 이어가다 지난 8월 0.0%(-0.04%·공식 지표는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표기), 9월 사상 첫 마이너스(-0.4%)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은 지난 10월 0.0%로 뒷걸음질을 멈췄지만 여전히 유례없는 저물가 행진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다르다.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는 이수정(46)씨는 “교통비부터 통신비, 하물며 애들 과자값도 올랐다. 무슨 근거로 물가가 내렸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매달 현장을 찾는 조사원들은 물가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밖에 없다. 이날 조사관 역시 “요즘은 김장철을 앞두고 배춧값이 많이 올랐다”며 “대형마트에서는 평소보다 배추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지난 1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에서 배춧값은 전년동월 대비 66.0%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발품을 팔아 집계한 물가임에도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과 차이가 나는 이유로 통계청은 ‘바스켓 효과’를 꼽는다.
소비자는 자신이 자주 사는 제품 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얘기다. 과일을 자주 사는 소비자는 다른 품목의 가격이 오르지 않더라도 과일값이 오르면 ‘물가가 올랐다’며 체감물가를 높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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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전문가들은 빨라진 소비행태 변화를 통계청이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현재 통계청은 5년마다 조사품목을 개편하고 있다. 5년 주기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소비 트렌드를 잡아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과 모바일 등 전자상거래 급증도 물가지표와 체감물가의 차이를 만든다. 온라인은 오프라인보다 물가 파악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현재 통계청은 460개 중 79개 품목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병행 조사하고 있다.
통계청장을 지낸 박형수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는 “온라인에선 비슷한 제품이 짧은 기간 안에 모델 번호가 바뀌어서 나오기 때문에 동일한 품목을 추적조사하는 데 오프라인보다 어려움이 있다”며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등 온라인 조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서는 체감물가와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2012년부터 품목에 부여하는 가중치 조정 간격을 좁혔다. 기존에는 품목과 함께 5년마다 조정했지만 2012년부터는 5년 주기 사이로 2∼3년에 한 번씩 추가로 조정한다. 현재는 2017년 조정한 가중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품목 개편 주기를 바꾸는 작업에만 3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조사 주기를 단축하기는 어렵다”며 “대신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활용해 계층별로 체감물가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실제 통계와 체감물가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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