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되는 '대중검열'... "창작욕구 저해" vs "정당한 비판"

'연재 중단'에 '그림 수정'도… 독자들의 영향력↑
독자 “정당한 비판.. 작품의 사회적 영향 고려해야"
작가 “창작의 자유 침해 우려”
계속되는 논란에도...”명확한 규제 기준 없어”
  • 등록 2020-10-13 오전 12:35:08

    수정 2020-10-13 오전 12:35:08

지난 8월 누리꾼들은 웹툰 작가 기안84의 ‘복학왕’ 304화 속 일부 장면이 여성 혐오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웹툰의 연재 중단을 요구한 국민청원에는 13만2000여명의 동의가 이어졌다. 결국 기안84는 관련 장면과 관련해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 작업을 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앞으로 크고 작은 표현에 더욱 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가 다양화하면서 독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웹툰이나 웹소설 작품 내용에 다양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독자의 정당한 비평이라는 의견과 작가의 창작욕구를 저해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관련 규정이 없고 콘텐츠 플랫폼 업체의 대응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연재 중단'에 '그림 수정'도… 독자영향력↑

지난 8월 기안84의 '복학왕' 논란 이후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는 웹툰계 여성혐오와 선정성·폭력성 논란에 독자들은 “웹툰이 대중화되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크므로 작가들도 사회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들의 강도높은 비판에 작가와 플랫폼들은 즉각 사과문을 올리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웹툰 내 여성 혐오 문제를 다루는 트위터 계정 ‘웹미’는 네이버 웹툰 ‘체인지’의 여성 캐릭터 신체 일부를 과도하게 표현하고 성적 대상화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웹미는 “주인공이 남성일 때의 방의 모습은 운동기구로 가득 찼다"며 "여성으로 주인공이 바뀌자 핑크빛으로 가득 차게 설정됐다”며 성 고정관념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작가와 플랫폼은 사과문을 게시하고 해당 그림을 일부 수정했다.

선정성 문제에 대한 웹소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외국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한국인 여학생의 연애를 다룬 학원 로맨스물 웹소설 ‘사립학교 이야기’는 인종차별과 높은 수위로 논란을 빚었다.

독자들이 '백인 등장인물에게 동양인이 차별당하는 내용은 인종차별'이며 '미성년자가 등장하는 소설에 특정 장면의 수위가 높은 것은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한 것이다.

전자책 플랫폼 리디북스는 논란이 불거지자 작가와의 상의 없이 무단으로 해당 웹소설을 삭제하는 등의 논란이 여러 차례 이어졌고 해당 웹소설은 판매 중지됐다.

과도한 신체 표현 및 미성년자 강간 미수 등으로 논란이 된 웹툰 ‘헬퍼’(사진=웹툰 ‘헬퍼’)


수위 높은 대중검열에 일부 작품 '휴재'

웹툰계 여성 혐오 논란에 불씨를 지핀 것은 웹툰 ‘헬퍼’다.

과도한 신체 표현, 미성년자 강간 미수 등 작품 속 여성 인물에 왜곡된 묘사가 이어지자 지난달 11일 해당 웹툰의 팬들은 공식 성명 글을 게시했다. 문제가 된 내용은 마약 투여, 불법 촬영물 촬영, 살인은 물론 여성 노인 캐릭터가 마약을 투여받는 고문장면까지 등장했다.

이에 독자들은 “선을 넘었다”, “지금까지 공론화되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등의 댓글을 적는 등 비판 여론이 이어졌다. 웹툰 ‘헬퍼’가 아무리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분류됐지만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하더라도 그 수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논란 이후 독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웹툰 내 여성혐오를 멈춰달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었고 해당 웹툰의 작가는 사과문을 올리며 당분간 웹툰 휴재의 의사를 밝혔다.

(사진=윤선생 만화 ‘왜 한국 만화는 쓰레기 취급 받는가’)


작가 “창작의 자유 침해 우려”

작가들은 독자가 작품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창작의 자유’가 침해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웹툰 작가 윤선생은 만화 ‘왜 한국 만화는 쓰레기 취급 받는가’에서 “규제는 창작자들이 자유로운 창작을 하는 것을 막는다”고 말하며 만화가로서 검열 논란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해당 만화 속 캐릭터는 “창작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자신들이 보고 싶지 않은 사회의 모습에서 눈을 돌리는 것일 뿐”이라며 “작가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면 된다. 독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보고 싫어하는 만화는 안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해당 글에는 “맞는 말이다”, “공감한다”는 200개 가량의 댓글이 달리며 많은 이의 공감을 받았다.

웹소설 작가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익명을 요구한 웹소설 작가 A씨는 “최근 민감해진 독자 검열때문에 작품을 쓸 때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A작가는 “웹툰과 마찬가지로 웹소설에도 논란이 되는 작품들이 분명 존재한다”며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안 보면 되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많이 보고 많이 팔리는 게 메이저 장르고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 마이너 장르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그는 “독자들 중에 로맨스 요소를 추가해 달라는 등의 세세한 요구로 스토리를 변형하고 장르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웬만하면 독자들의 의견에 수긍하는 편이지만 작품의 본질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웹툰 연재 플랫폼들은 모자이크 등으로 작품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사진=웹툰 캡처)


콘텐츠 플랫폼 업계는 미봉책으로 논란만 확산

소위 독자검열 강화 움직임으로 독자와 작가간 미묘한 갈등이 나타나지만 정작 플랫폼은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독자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수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작품가치를 훼손하는 경우도 나타나는 상황이다.

지난 8월 공개된 기안84의 ‘복학왕’ 309화에서는 작중 인물이 들고 있는 날카로운 칼을 모자이크 처리해 마치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는 듯한 모습이 그려졌다.

다른 웹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품 속 흉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의 주먹 등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선정성 논란이 될 만한 그림에는 아예 흰 바탕으로 가리며 논란 방지에 애를 쓰고 있는 상태다.

이에 누리꾼들은 “독자가 원한 것은 이런 게 아니다”, “말도 안 되는 방식이다”, “스토리를 해친다”라며 비판했다. 플랫폼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당장 눈 앞의 논란을 피하기 급급해 몸을 사린다는 것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웹툰 규제와 관련해 “모자이크의 경우 사내 가이드라인에 따라 조치한 것"이라며 “작품 업로드 전 검토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작가님과 소통을 통해 수정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전달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웹소설 업계 관계자들도 작품 내용 규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성인규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장은 “어디까지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작가들 사이에서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해석의 차이지만 결국엔 독자의 판단”이라며 “웹소설 시장의 경우는 아직 시작 단계이므로 작가들에게 창작 단계에서 강력한 규제를 내리지는 않는다. 작품 공개 후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작품이 흥하고 망하는 것이 자연적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냅타임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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