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으로부터 날 지키려 먹고 또 먹었다

헝거
록산 게이│340쪽│사이행성
  • 등록 2018-03-28 오전 5:04:00

    수정 2018-03-28 오전 5:04: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페미니즘’이란 단어만 들어도 거부감을 느끼는 이라면 책의 띠지에 적힌 “나쁜 페미니스트의 작가”란 문구에 책장을 펼치기 꺼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헝거’는 그런 색안경을 벗고 봐야 한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상처, 그 상처를 지우기 위한 노력, 마침내 상처 있는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한 사람의 진솔한 고백이 책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시작은 덤덤하다. 저자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다. 지금 이곳에서 내 이야기와 내 역사를 들려주려고 한다. 내 몸과 내 허기에 관해 고백하려 한다”며 이야기의 막을 연다. ‘몸’과 ‘허기’란 단어가 다이어트를 연상시키지만 저자는 이내 “체중감량으로 인한 눈부신 변화를 그린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다”라며 그런 기대를 지운다. 대신 저자는 자신이 어떤 이유로 키 190㎝에 몸무게 261㎏의 거구가 됐는지, 그런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기혐오를 이겨냈는지를 담백한 어투로 풀어간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몸을 갖고 태어난 저자가 살을 찌우게 된 것은 자신의 인생을 ‘비포’와 ‘애프터’로 나눈 사건 때문이다. 12세 때 좋아하던 또래 남자아이와 그 친구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온몸에 상처가 새겨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선택한 것은 바로 음식이었다. 몸집이 커지면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질 것이란 믿음이 그녀로 하여금 먹고 또 먹게 만들었다.

물론 거구의 몸이 된 뒤에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뚱뚱한 주제에”라는 경멸과 혐오의 시선에 더해 자기혐오란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가족에게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성폭력이 자신의 탓이란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저자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상처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움직여왔는지를 이야기한다. 펜으로 꾹꾹 눌러쓴 듯 문장마다 스며든 저자의 진심이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최근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성폭력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성폭력을 당했으면 경찰서에 가야지 왜 공개적으로 고발하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책을 권하고 싶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성폭력도 ‘미투’ 운동도 성별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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