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휘청' 첨성대에 '와르르' 무너진 것

  • 등록 2016-09-26 오전 6:06:10

    수정 2016-09-26 오전 6:06:1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부장] 경주 첨성대가 ‘휘청’하면서 약하디 약한 문화재보호시스템을 강타했다. 지난 12일과 19일 근대기에 가장 강력했다는 지진이 몰고 온 여파다. 땅이 요동치면서 보존매뉴얼도, 보수방법론도 없는 문화재정책이 ‘한방에 훅 간’ 셈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바에 따르면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632~647) 때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다. 지대석 위에 기단부를 만들고 원통형으로 27단을 쌓은 뒤 다시 정자석을 2단 올린, 362개의 화강암벽돌구조물이다. 1962년 국보 제31호로 지정했다. 그간 천년 풍파에도 첨성대가 건재했던 건 구조물의 무게중심이 낮고 단면이 원형이라서란다. 하부가 상부보다 더 크고 12단까진 내부가 흙으로 채워져 오뚝이처럼 견디는 복원력이 있단다. 19∼20단과 25∼26단 내부의 정자석도 진동을 버티는 요인이라며 한 전문가는 “현대 건축물의 내진설계기법을 적용했다”는 감탄어린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강건한 구조물이 흔들렸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중심축에서 북쪽으로 20.4㎝가 기울어졌던 데서 이번 지진으로 2.1㎝가 더 기울었다. 이태 전 감사원이 발표한 수치서 2㎝의 변이가 일어났고 매년 1㎜ 정도란 평균치를 20년 앞당겼다. 여기에 정자석의 한 부재가 12일 2.2㎝, 19일 3.8㎝씩 이동해 5㎝ 넘게 벌어지게 됐다.

상황이 이쯤 되자 당황한 것은 문화재청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첨성대를 해체·보수하자는 얘기를 또 듣고야 말았으니. 뉴스를 이벤트처럼 좇는 일부 언론이 상태를 증폭했고 입 빠른 전문가들이 호들갑을 보탰다. 문화재청은 추가정밀조사를 하고 전문가와 논의,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해체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허둥댔다.

사실 첨성대 해체·보수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서 나왔던 게 첫 기록이다. 구조와 기반이 허술해 붕괴할 지경이니 당장 해체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떠들어댔더랬다. 당시 배경이야 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경주의 유물을 빼돌리기 위한 낭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끝난 이후에도 첨성대는 관과 학계에서 잊을 만하면 불쑥 던진 ‘붕괴위기론’에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이번 사태에 이르렀다. 기울어지고 벌어진 수치를 측정한 것 외에 대단한 근거 없이 해체·보수하자고 덤벼댄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사나흘 3D 스캔 입체영상까지 동원해 들여다본 결과 다행히 첨성대는 심각한 손상은 피해간 모양이다. “붕괴를 초래할 정도는 아니”라며 문화재청은 당장 해체·보수에 들어가지 않고 일단 지켜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첨성대 얘기가 아니다. 문화재를 향한 소신 없는 생각과 정책, 대응 말이다. 사건·사고가 터지기 전까진 아무일도 없는 것이란 무사안일주의는 지진보다 더욱 위태롭다. 이번 지진에 같이 흔들린 영남지역의 문화재는 100건. 국가지정문화재 52건, 시도지정문화재 25건, 문화재자료 23건 등이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석굴암과 불국사 문화재도 다수 포함됐다. 비틀어지고 깨지고 어긋난 이들을 일회용 수습책만으로 어찌 감당할 건가.

하긴 이번 지진에서 책임이 자유로울 정부기관이 어디 있겠나.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이라 대응이 미비했단 한 고위관료의 고백이 뼈아플 따름이다. 다만 분명히 따질 건 ‘불나면 끄고 무너지면 세우라’는 단순초보매뉴얼로는 어림없단 거다. 지진은 물론 물·불·바람 등의 재난에 즉각 가동할 맞춤형 대비책이 시급하다. 애꿎은 첨성대로 소란만 부추길 일이 아니다. 해체든 보수든 정작 손대야 할 건 따로 있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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