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열페]"월급은 커녕 밥값도..'열정'만 먹고 살수 있나요?"

학원강사 합격후 3주간 '무임금 교육'
학원측 "돈 받아야할 수업" 적반하장
정부 청년인턴제도 열정페이 온상
대학 조교, 수당 등 지도교수에 상납
  • 등록 2016-03-08 오전 6:30:00

    수정 2016-03-08 오전 6:35:31

[이데일리 이성기 원다연 전상희 기자] “요즘 같은 때에 ‘배 부른 소리’한다 하겠죠. 3주 동안 풀 타임으로 나가면서 돈 한 푼 못 받았는데 그래도 참아야만 했던 걸까요.”

지난달 경기도 한 대형 학원에 강사로 취직한 신모(28·여)씨는 “아무리 채용 과정이라해도 교통비 조차 없이 3주 동안 ‘무임금 교육’을 받으라고 하면 얼마나 견디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신씨는 “필요한 업무 훈련을 받게 하고 일을 하면 걸맞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열정페이 근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고 떠들썩했지만 실제 뭐가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류 통과 후 시범 강의까지 마친 뒤 합격 통지서를 받은 신씨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취업준비생 신분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들떴다. 교수법과 실습 등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지는 3주 간의 교육만 마치면 정식 입사였다.

문제는 교육 기간 수당은커녕 차비나 식대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점. 학원 관계자는 취업 때문에 전남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한 교육생에게 “원래 돈 받고 가르쳐 드려야 하는데 별도 교육비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동네 작은 보습학원도 아니고 전국에 캠퍼스만 100곳이 넘는 업계 10위권 업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OT) 2주차가 되자 빈 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씨는 “기업으로 치면 삼성·현대차급인 대형 업체가 교육생들에게 ‘3주간은 알아서 버티라’란 식의 횡포를 부린 게 아니냐”며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서른이 코 앞인 처지라 쉽게 박차고 나올 수도 없었다”고 털어놨다.

신씨는 “어느 기사를 보니 여자 취업 나이 한계선이 28세라는데 병(丙)이나 정(丁)쯤 되는 취준생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뿐”이라며 “허리띠 바짝 졸라매고 잠자코 버티거나 제 발로 나오거나더라”라며 한숨을 쉬었다.

비단 신씨뿐 아니라 ‘고용 절벽’에 맞닥뜨린 청년층에게 우리 사회는 열정페이의 ‘무법천지’가 된 지 오래다.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열정페이 근절 가이드라인’을 마련, 고용주가 채용 조건 등을 미끼로 부당한 처우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온도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 등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부 정책도 ‘열정페이’의 예외가 아니다. ‘청년인턴제’는 만 15세 이상 34세 이하인 청년을 인턴으로 고용하면 최대 3개월간 월 6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정책 취지와 현실의 괴리는 컸다. 대학 졸업 후 청년인턴제로 최근 광고대행사 인턴으로 들어간 성모(25)씨는 1개월 반 만에 자진 퇴사했다. 성씨는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배우고 싶어 3개월 뒤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입사했지만 현실은 크게 달랐다”고 돌이켰다.

성씨에 따르면 채용 공고와는 달리 오전 8시 반 출근에다 야근은 밥먹다시피 반복됐다.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거드는 잡무가 대부분이었고 직원들 퇴근 후 남은 뒷정리는 인턴의 몫이었지만 야근수당은 당연히 없었다. 성씨는 “계약서상에는 오후 6시가 퇴근이었지만 ‘칼퇴’는 불가능했다”며 “평균적으로 밤 9시~10시쯤 퇴근했고 11시를 넘긴 적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대학 사회의 ‘열정페이’역시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된다. 대표적인 ‘갑·을’관계,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K대 이공계 대학원 석사과정인 A(27)씨는 코 앞에 닥친 졸업 논문 준비 대신 지난주 내내 지도교수 출장 동행과 업무 보조로 시간을 보냈다. 각종 프로젝트 참여에 따른 임금과 조교 장학금을 포함하면 등 A씨의 연간 급여는 2000만원 남짓이지만 실제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거의 없다. 등록금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도교수에게 주는 게 관례인 탓이다.

A씨는 “교수들은 자신들 실력과 인맥으로 프로젝트를 따오고 조교 장학금을 해결해 주니 자신들에게 돈을 주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졸업을 위해 실력이 아닌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현실에서 지도교수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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