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 생화 안된다"는 김영란법…`스승의날`에 상처받는 교사들

권익위 "종이 카네이션은 되지만 생화는 안 돼"
교사들 "꽃 한 송이도 디테일 따져야…모욕 느껴"
일부 교육청 김영란법 퀴즈대회도…"우리가 범죄자?"
조용히 넘기는 학교들…"교육의날로 바꾸자" 청원까지
  • 등록 2019-05-12 오전 9:56:21

    수정 2019-05-12 오전 9:57:16

스승의 날에 훈포장을 받는 선생님들의 그림자가 무대 벽에 비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15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제37회 스승의 날 기념식(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신하영·신중섭 기자] “차라리 스승의 날을 없앴으면 좋겠다.” 오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둔 교사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사회적으로 교사 권위가 추락하고 있어 스승이란 호칭도 부담스럽다. 특히 교사들도 지난 2016년 9월 시행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기에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일부 교육청이 스승의 날을 앞두고 개최한 퀴즈대회가 논란이 됐다. 해당 퀴즈대회는 교사에게 어떤 선물을 전달할 경우 김영란 법에 어긋나는지 등을 학생들에게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교사단체는 “스승의 날을 빌미로 교사를 모욕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카네이션 규정 따지는 자체가 자존심 상해”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3년차를 맞으면서 학교 곳곳에서는 달라진 스승의 날 풍경이 감지되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에 대한 평가·지도를 수행하고 있어 학생·학부모로부터 식사나 선물 등을 제공받을 수 없다. 선물 제공자와의 직무관련성이 인정돼 금액과 상관없이 모두 금지 대상이다. 심지어는 학생 개인이 달아주는 카네이션도 금지된다.

다만 전교회장이나 반장이 학생대표 자격으로 카네이션을 전달하는 행위는 허용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6년 “스승의 날에 학생 개인이 드리는 생화는 안 되지만 학생 대표가 주는 카네이션은 된다”는 해석을 내렸다. 스승의 날에 정으로 나누던 꽃 한 송이도 이처럼 ‘디테일’을 따져야 한다는 점에서 모욕감을 느낀다는 게 교사들의 속내다. 서울의 고교 교사 배모(42)씨는 “스승의 날에 정을 나누던 꽃을 주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란 법 퀴즈대회에 교사단체 “모욕적”

일부 교육청은 이런 교사들의 불편한 심기에 기름을 부었다. 서울시교육청 중부교육지원청은 지난 1일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승의 날 맞이 온라인 퀴즈대회를 진행하다가 교사들이 반발하자 지난 3일 대회를 중단했다. 해당 퀴즈대회는 김영란법과 관련한 OX퀴즈 10개를 푸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예컨대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들이 돈을 모아 교사에게 케이크를 선물하는 게 가능한지 등을 묻는 식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는 성명을 통해 “스승의 날을 빌미로 교사를 모욕하는 풍토를 개탄한다”며 “상품을 미끼로 학생들이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도록 가르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도 “일부 교육청의 퀴즈대회는 교원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교사들이 충분히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는다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도 법 조항을 따져가며 주고받아야 하기에 아예 이날을 기념하지 않는 학교도 늘고 있다. 경남지역 고교 교사인 이모(35) 씨는 “예전에는 스승의 날이 되면 교실에 풍선도 달고 학생들이 과자나 케이크를 사서 깜짝 파티를 열었지만 지금은 그런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같은 지역 고교 교사 김근영(29) 씨도 “스승의 날은 평소와 똑같이 수업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됐다”며 “수업 후 교사들끼리 간단히 자축하는 정도”라고 했다.

“안 주고 안 받는 문화, 편하다” 반응도

오히려 스승의 날의 바뀐 분위기가 마음 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사 김모(30) 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도 학생·학부모가 주는 선물은 부담스러웠다”며 “법 시행 3년차가 되면서 이제는 선물을 들고 오는 학부모가 없어 마음이 편하다”라고 말했다. 경기지역 초등교사 유모(29) 씨도 “캔 음료 같은 작은 선물을 들고 학교를 찾아오는 학부모가 없어져 교사나 학부모 모두 부담이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스승이란 호칭이 부담스럽다는 교사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으로 학생 인권은 강조되고 있지만 교권은 추락하고 있어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 대한 체벌금지·소지품검사금지·집회자유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경기·광주·서울·전북교육청이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 서울지역 배모 교사는 “이미 사회적으로 교사의 권위는 추락하고 있고 학생지도 권한도 제한돼 있는데 스승으로 불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지적했다.

“감사함 전하는 게 뇌물? 과도하다” 여전

최근에는 현직교사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려 관심을 모았다. 전북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종이카네이션은 되고 생화는 안 되고 이마저도 학생대표가 주는 카네이션만 된다는 식의 지침은 어색하기만 하다”며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꿀 것을 청원한다”고 읍소했다. 해당 청원은 12일 기준 3138명의 동의를 얻었다. 서울의 고교교사 김모(42) 씨는 “차라리 스승을 날을 없애고 교육의 날로 지정, 교사·학생·학부모가 어울리는 날로 만들면 좋겠다”고 해당 청원에 찬성했다.

경남지역의 고교 3학년 최모(18) 양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담임 선생님 선물은 상상도 못하고 음료수 한 캔도 조심스럽다”며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는 순수함이 뇌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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