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연령 상향]④늘어나는 어르신 운전자…비난보단 교통복지 확충이 우선

고령 교통사고 급증…실질적 안전대책 시급
적성검사 강화 이어 도로교통법 개정안 발의
부산·서울 양천구 등서 면허반납제도 시행중
  • 등록 2019-03-11 오전 6:12:00

    수정 2019-03-11 오전 10:15:53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지난 2005년 4월부터 필기시험에서 949번 떨어지는 등 960차례 도전 끝에 지난 2010년 5월 운전면허를 딴 70세 할머니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전북 완주군에서 전주시 여의동에 있는 면허시험장에 가기 위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는 등 하루의 절반을 소비하며 시험을 봤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합격까지 들인 인지대만 500만원이 넘었다. 할머니의 열정은 국내를 넘어 뉴욕타임스와 로이터 등 해외 유수언론을 통해 세계에 알려질 정도였다.

스스로 젊다고 느끼는 노인이 늘고 어르신 생활수준도 향상되면서 이처럼 나이 들어서도 운전하는 어르신이 늘고 있다. 그러나 신체반응이 떨어지고 시력 저하 등을 겪으며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일부 젊은이들은 어르신 운전자를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지난 7일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초고령 운전자 개인택시 감차를 협의하기로 하면서 고령자 운전을 제한하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의 택시 감차사업을 연령대 기준으로 바꿔보자는 취지다. 국토교통부는 초고령 택시운전사 현황을 조사한 후 감차수요를 산정할 계획이다.

고령운전의 위험성은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사고는 △2014년 2만275건 △2015년 2만3063건 △2016년 2만4429건 △2017년 2만7260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14~2017년중 고령운전자가 낸 사고로 사망한 사람만 3185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9.1%에서 12.1%로 3.0%포인트나 상승했다.

고령자 운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고령운전자 사고를 줄일 실질적인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황남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 연구위원은 “노인들은 운전 시 느끼는 어려움으로 시력 저하를 가장 많이 호소하고 있다”며 “신호·교차로 등 교통상황에 대한 판단력 저하 또한 많이 꼽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어르신들의 운전대를 빼앗을 순 없는 노릇이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는 고령운전자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생계형 운전자 등도 감안해야 한다. 결국 늘어나는 젊은 노인들을 위한 교통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다. 밝은 발광다이오드(LED) 신호등을 설치하거나 `고령운전자` 스티커를 부착해 양보운전을 유도하는 등 과도한 비난보다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이미 정부도 도로교통법을 개정, 올해부터 7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면허적성검사 기간을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다. 적성검사 기간에 맞춤형 교통안전교육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그러나 보다 다양한 보완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개정해서라도 타 기관과의 의료정보 공유를 통해 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고령운전자의 질환이나 복용 약물 등 처방에 따라 적성검사를 수시로 요청한다거나 일정기간 면허를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도로 표지판 크기를 더 키우고 개수를 늘려 위치간격을 좁히고 야간 조명이나 반사율 조절을 통해 고령운전자의 교통체계 가독성과 시인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부 교통안전복지과 관계자는 “도로표지판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면서 “여건이 가능한 상황인 만큼 각 도로를 관할하는 지자체가 표지판 크기를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야간 조명식 표지는 지난해부터 추진해 오는 2022년까지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다만 고령운전자에 갖는 국민 불안감은 어쩔 수 없다. 생계형 고령운전자에 대한 보완 대책과 함께 반드시 운전할 필요가 없는 고령운전자를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선제적으로 줄여 교통사고 예방 효과를 제고하는 각종 정책이 본격화하는 이유다. 특히 20년 전 노령운전자 면허증 자진반납제를 시행한 일본 사례를 참고해 면허반납에 따른 각종 혜택 부여를 전제로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국내에서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에선 고령운전자의 운전면허 자진반납을 통해 교통사고율을 절반 수준으로 감소시키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탤런트 양택조 씨가 최근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현해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고 도로교통공단 홍보위원으로 위촉된 사실을 밝히며 “고급 트래킹 신발 하나를 받았는데 건강을 위해 면허 반납하고 걷자”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부터 양천구는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고령운전자 운전면허증 자진반납 우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운전면허를 소지한 65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면 10만원이 충전된 선불교통카드를 지원하고 있다. 전국에서는 부산시에 이어 두 번째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18.8%가 현재 운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응답했다. 실제 운전대를 잡는 노인이 10명 중 2명 정도로 비율이 높지 않고 운전을 그만둔 나이가 평균 62.1세인 것으로 조사돼 65세 이상 고령자 면허 자진반납제는 의미 있는 시도란 평가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일본에서도 제도 도입을 두고 노인 차별이란 논란이 있었지만 ‘안전의 문제’, ‘생명의 문제’라는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며 “고령운전자들의 교통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다른 차량 및 보행자의 안전한 교통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려는 논의도 본격화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민 의원은 지난달 27일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에서 교통비 지원 등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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