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경제 다시보기]"월급이 왜 안 오르죠?" L자형 불황의 그림자

우리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이야기
  • 등록 2016-04-09 오전 8:00:00

    수정 2016-04-09 오전 8:00:00

지난 1980년 이후 경제성장률과 가처분소득증가율 추이. 외환위기 때인 1998년을 기점으로 가처분소득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돌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이후로는 2~3%대 저성장이 계속되는 ‘L자형 불황’이 고착화되고 있다. 단위=%. 출처=통계청, 한국은행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국내총생산(GDP), 즉 경제 성장을 주제로 벌써 세 번째 인사 드립니다. 지난주에는 ‘행복하지 않은’ 지출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주거비, 교육비 등이 되겠네요. 1인당 GDP는 꾸준히 증가하는데, 그러니까 각 개인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는 커지는데, 게다가 맞벌이까지 하는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쫓기며 사는 것 같습니다.

이번주도 비슷합니다. 지난주가 지출 측면이었다면 이번주는 수입 측면에서 볼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 중 직장인이 계시겠지요. 어떠신가요. 연봉은 매해 눈에 띄게 오르고 있습니까. 자영업자 혹은 임대업자 분은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고 계십니까.

성장 만큼 오르지 않는 소득

경제 지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위 그래프를 한번 보세요. 우리 경제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10% 이상 고성장을 이뤘습니다. 파란색 꺾은 선이 10% 안팎을 왔다갔다 하는 게 보이시지요. 그런데 또 주목할 게 빨간색 꺾은 선입니다. 상당기간 파란색 꺾은 선보다 위에 있지요. 1인당 가처분소득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3저 호황 때인 1986년을 보면요. 당시 경제성장률은 11.2%였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이지요. 더 놀라운 건 가처분소득 역시 12.5% 올랐다는 겁니다. 1987년 때는 경제가 12.5% 성장하고 소득은 12.9% 증가했습니다. 요즘 직장인 중 10% 넘게 연봉이 오른 분은 몇이나 될까요. 예전에는 성장의 과실이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달됐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은 신이 나서 생산하고 가계는 기분좋게 돈을 쓰니, 경제는 꿈틀댈 수 밖에 없지요.

상황이 달라진 건 1998년 외환위기 이후입니다. 빨간색 꺾은선이 파란색 꺾은선 한참 아래에 있지요. 1998년 경제성장률이 -5.5%이고 소득증가율이 -4%였는데, 이듬해 경제는 11.3% 성장한데 비해 소득은 2.7% 증가한데 그칩니다. 그 이후 가처분소득은 보통 1~2% 증가에 머물렀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초봉 3000만원을 받고 매해 2%씩 인상된다고 합시다. 10년을 일하면 얼마일까요. 3585만원입니다. 10년을 일하니 585만원 증가한 겁니다. 20년 이후에는 어떨까요. 4370만원입니다. 이게 많은지 적은지 판단은 독자 여러분 몫이지만, 저는 정체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성장의 달콤함이 가계로 퍼지는 정도가 그만큼 작아진다는 뜻입니다. 기업이 돈을 벌면 월급도 주고 투자도 하고 세금도 내고 배당도 하고, 또 사내유보로 두기도 합니다. 그 중 월급의 비중이 줄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업의 경제심리가 안 좋다는 게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외환위기의 영향력은 예상대로 아주 강했습니다.

제가 지난주 1인당 GDP를 설명 드렸지요. 지난해 3000만원을 약간 상회했습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억원을 훌쩍 넘지요. 가계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1인당 가처분소득은 절반인 1500만원 수준입니다. 4인 가족으로 치면 6000만원입니다. 가족이 셋이라면 4500만원이지요.

점점 두 개로 쪼개지는 세상

더 냉정한 현실도 있습니다. 저성장일수록 소득격차가 커지는 점입니다. 연초 어느 금요일로 기억합니다. 오후 3시쯤이었는데요. 서울 강남 쪽 모 백화점을 가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쇼핑족들로 발디딜 틈이 없더군요. 불황이라고 난리인데도 말이지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아,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명절 때마다 공항을 찾는 이도 매번 사상 최대를 경신한다고 하지요.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상위 10%의 월 평균소득은 962만1438원입니다. 하위 10%(98만1849원)에 비해 863만9589원 더 많은 겁니다. 10년 전에는 어땠을까요. 2004년 상위 10%의 소득(626만6820원)은 하위 10%(67만3071원)보다 559만3749원 더 많았습니다. 그 격차가 300만원 이상 더 커진 겁니다.

굳이 통계를 들이밀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은 점점 두 개로 쪼개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장의 과실을 누린 기성세대와 저성장에 부닥친 청년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한 세대 내에서도 갈리는 시대입니다. 취업에 빌빌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스타트업으로 큰 성공을 일군 이도 있지요. 불과 몇십년 전 10% 이상 성장을 골고루 향유했다면 이제는 1~2% 성장을 놓고도 티격태격 하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그리 밝지 않습니다. 또 성장하면 되겠지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정책당국이든 금융권이든 “이제는 저성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인사가 늘고 있습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 상황을 함께 봐야 합니다. 어떻냐고요. 금융위기 이후 심각한 ‘L자형 불황’ 상태입니다.

세계경제는 2009년 0% 성장률에 머물렀습니다. 이후 2년간 5.4%, 4.2%로 좀 살아나나 싶더니, 다시 주저앉았지요. 2012년부터 3.4%→3.3%→3.4%→3.1%입니다. 우리 경제와 패턴이 똑같습니다.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쉽지 않다”고 진단합니다.

“삶의 질 반영 못 하는 GDP”

문제는 정작 이런 식의 이야기가 잘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GDP가 증가해도, 과거보다 소득은 증가하지 않고 불필요한 지출은 늘지만 여전히 GDP만 바라보는 게 정부입니다. GDP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생산은 경제 성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만 다른 측면이 도드라지고 있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솔직히 어디를 가든 GDP를 어떻게 더 증가시킬지만 논의하지, 실제 그 이면의 삶의 질은 다루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건 참 중요한 포인트네요.” 요즘 정부의 경기진단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전체가 한 번 곱씹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경제뉴스를 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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