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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용산역 인근에 있는 한 카메라 판매 업체. 입구에 들어서자 진열대 한쪽에 ‘몰래카메라’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몰카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는 말에 이 업체 사장은 구입 대신 대여하는 방법이 있다며 만년필 형태의 변형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카메라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겉으로 분간조차 쉽지 않다. 업체 사장은 “요즘 누가 촌스럽게 안경형을 사느냐”며 “요즘은 만년필이랑 보조배터리형이 잘 나간다”고 소개했다.
정부가 ‘불법촬영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불법 촬영에 악용할 수 있는 변형 카메라 등록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판매업자들은 공무원 탁상행정일 뿐 실현 가능하지 않은 대책이라는 반응이다. 몰카 해결을 위해서는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게 최선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 15일 공중화장실 약 5만 곳을 상시 점검하기로 하는 등 화장실 몰카 근절을 위한 ‘화장실 불법촬영 범죄 근절 특별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약 50억원을 투입해 공중화장실 불법촬영 차단을 보여주기식 점검에서 벗어나 공중화장실 5만 곳에 대한 상시 점검을 하기로 했다.
경찰청도 경찰관 534명·의경 436명 등 970명을 투입해 전국 피서지 78곳에 있는 탈의실과 화장실 등 다중이용시설에 불법카메라 설치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이 과정에서 성범죄가 발생하면 무관용 원칙에 따라 엄정대응할 방침이다.
하지만 판매업자들은 코웃음을 친다. 정확한 유통물량 파악조차 쉽지 않은 수많은 변형카메라를 모두 등록하는 게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불법촬영 등 범죄에 사용됐다가 덜미를 잡혀야 비로소 불법 유통된 사실을 알 수 있는 만큼 적발만 되지 않으면 문제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용산전자상가내 한 카메라 판매 업체 사장은 “등록제라는 게 결국 변형카메라를 사서 불법촬영을 하다 경찰에 발각돼야 카메라 조회가 들어오고 처벌을 받는 구조”라며 “몰카라는 게 걸리는 사람보다 안걸리는 사람이 훨씬 많다. 불법촬영에 쓰일까봐 팔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카메라 판매 업체 사장도 “제품을 판매할 뿐인데 정부는 지금 그 제품으로 뭘 찍는지까지 판매자가 책임지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등록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실제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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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 중인 변형카메라 등록제는 곳곳이 구멍이다. 개인이 소형카메라를 사서 변형카메라로 개조하거나 빌려 쓰는 경우엔 속수무책이다.
실제로 용산전자상가내 카메라 판매 업체 대부분이 변형카메라 대여를 해주고 있었다.
한 업체 사장은 “가격 자체가 만만치 않다 보니 대여 문의도 꽤 들어온다”며 “(대여 고객을 위해) 판매가의 절반 가격에 15일 대여로 방침을 정해 놨다”고 말했다.
변형카메라 등록제 추진을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아직 세부적인 내용이 정해진 게 아니다”며 “소형카메라를 개조해 악용하는 사례나 대여하는 경우 등을 모두 감안해 등록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몰래 훔쳐보려는 수요를 줄이지 않고 변형 카메라만을 규제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처벌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는 등 중요한 범죄라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