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째 '재택감옥'…노트북에 메어 '삼식이'가 됐다

코로나가 바꾼 라이프스타일…재택근무의 이면
수시로 오는 업무 메시지·전화에 집에서 일해도 움직일 틈 없어
집에서 삼시세끼, 라면 자주 먹어…헬스장 못가 '확찐자' 신세
"전세 만기 다가오는데…집 보여주지도, 보러가지도 못해요"
  • 등록 2020-03-06 오전 6:30:00

    수정 2020-03-06 오전 11:32:05

[이데일리 김보경 기자]“마스크가 많으면 부자, 마스크를 못 구하면 루저죠.” “재택근무요? 재택감옥입니다.”

마스크 알람으로 시작해서 마스크 걱정으로 잠드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면 좋지 않아?”라는 질문에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직장인들. 의도치 않게 삼식이(하루 세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을 빗댄 말)이가 된 남편들. 커피전문점에 다시 등장한 테이크아웃 컵. 국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45일째. 재택근무 2주차에 접어든 지금. 그동안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고, 예상치 못한 환경에 맞닥뜨린 일상을 들어봤다.

(이미지=이동훈 기자)
마스크 알람·광클이 반복된 하루와 생얼 외출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워킹맘 김모(40)씨. 오늘은 기어코 마스크를 구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줄서기’를 할 시간은 없다. 재택근무 중이지만 수시로 오는 메신저와 전화 때문에 노트북 앞을 떠날 수가 없다. 노트북과 휴대폰을 번갈아 체크하며 수시로 마스크를 구매할 시도를 해본다.

김씨는 우선 공영홈쇼핑 채널을 틀었다. 마스크 판매 방송이 언제 나올지 몰라서다. ‘착한 마스크 판매업체’에 모두 ‘찜’ 버튼을 눌러두고 마스크 판매 시간대별로 스마트폰에 알람을 설정해 놨다. 오전 내내 거의 한 시간마다 알람이 울린다. 알람과 함께 ‘광클’을 시작했지만 오늘도 실패다. 공영홈쇼핑의 마스크 판매 방송이 시작됐다. 방송 시간 10여분. 김씨 198통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통화량이 너무 많아…”라는 말만 198번을 들었을 뿐 허무하게 휴대폰을 놓고 말았다. 휴대폰이 아닌 집전화가 더 연결이 잘 된다는 ‘성공후기’를 보고 없앤 지 수년 된 집전화가 갑자기 아쉬워졌다.

바로 그 때. 단톡방에 ‘요즘 재벌 3세 지갑’이라는 제목으로 지갑에 흰색 마스크가 터질 듯이 들어있는 사진이 공유됐다. 평소 지갑에 터질 듯한 돈도 없는데, 지금은 마스크도 살 수가 없구나. 하루 종일 마스크 구매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 미룰 수 없는 외부 미팅으로 출근을 하게 된 김씨는 화장대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 ‘생얼’로 외출하기로 결정했다. 마스크를 구매할 때까지 남은 마스크로 연명하려면 재사용을 해야 한다. 김씨는 “평소처럼 화장을 하면 마스크에 화장품이 묻어 재사용이 어렵다”며 “생얼로 나갔더니 ‘안색이 좋지 않다’는 얘길 듣고 기분이 더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공영쇼핑 마스크 관련 공지 (자료=공영쇼핑 캡처)
삼식이, 라면은 맛있지만 ‘확찐자’ 걱정도

A사 부장인 이모(45)씨도 재택근무 열흘째다. 이모씨는 요새 새로운 라면 맛에 푹 빠졌다. 그동안은 몸에 좋지 않다며 아내가 라면을 먹지 못하게 했다. 아주 가끔 밖에서 아내 몰래 먹는 라면는 작은 일탈이었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시작하자 아내가 달라졌다. 개학이 늦어진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갑자기 삼식이가 된 이씨까지 챙기진 못했던 것. 점심은 알아서 챙겨먹으라며 자연스럽게 라면 먹는 것이 허락됐다. 평소에 먹던 ‘신라면’도 먹고, 영화 ‘기생충’에 나온 ‘짜파구리’도 끓여봤다. 편의점에 가보니 이씨가 먹어보지 못한 라면이 너무나 많아 하나씩 맛보는 중이다. 그런데 살짝 불어난 뱃살을 보니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출퇴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삼시세끼를 해결하다보니 운동량이 절대부족하다. 동네 헬스장은 그동안에도 자주 가진 않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는 아예 닫아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주말마다 나가는 조기축구도 구장 예약이 취소돼 TV에서 연예인들이 하는 축구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재택근무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야 적어졌지만 집에서 운동도 안하고 먹기만 하니 요새 다들 두려워하는 ‘확찐자’가 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손소독제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커피전문점에서 시럽을 손소독제로 오인하고 손에 사용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앗! 손소독제가 아니라 커피시럽이었네

직장인 강모(34)씨는 요새 마음이 급하다. 전세 만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집을 보여주지도, 집을 보러가지도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집에 외부인을 들이기 꺼리는 분위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통해 방문약속을 잡았다가도 “코로나 때문에 다음번에 오라고 한다”며 번번이 취소됐다. 마스크를 쓰고 잠시 다녀가는 것은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던 강씨는 다른 집 방문을 몇 번 거부당하자 코로나19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강씨도 부동산에 “이번 주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방문 약속을 다시 잡자”고 말했다.

중계업소 사장은 “정부가 못 잡은 집값을 코로나가 잡겠다”는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최모(29)씨는 재택근무 중이지만 하루에 한번은 집 근처 커피전문점을 찾는다. 회사 방침은 ‘사람이 모인 곳은 피하라’였지만 33㎡(10평) 남짓 원룸에 하루 종일 있다 보니 답답하기 때문. 최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커피 주문 후 판매대 앞에서 기다리다가 무심코 커피시럽을 손소독제로 착각하고 손에다 짠 것. 최씨는 “어딜 가든 손소독제부터 찾아 누르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니 반대로 손소독제를 시럽으로 착각해 커피에 넣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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