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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은행 자산을 운용할 때 수익성과 건전성, 자본적정성을 동시에 잡으려 노력하는데요. 지금은 건전성에 무게를 둬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A 행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최근 국내외 경제에 변수가 워낙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수익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연초 염두에 뒀던 대출 증가 규모를 점차 줄이겠다는 것이다. A 행장은 “은행이 굴리는 자본의 건전성이 깨지면 결국 수익성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또다른 은행의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도 “경기 침체 흐름이 취약업종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면 신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며 “여신 성장률 목표치를 하향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올해만 5대 은행에 55兆 뭉칫돈
1일 이데일리가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여·수신 현황을 분석해보니, 올해 들어 5대 은행의 정기예금에는 55조5280억원이 유입됐다. 단순 계산하면 올해 1년간 75조원 내외의 뭉칫돈이 들어올 수 있는 속도다. 지난해(70조8335억원)보다 큰 규모다. 2016년 당시 정기예금 순유입액은 22조1526억원에 그쳤다.
정기예금 쏠림은 은행과 고객의 수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은행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고객 자산을 보수적으로 관리하려 하고, 고객은 소비와 생산을 미루고 안전한 곳에서 돈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특히 금리(1년 만기)가 1% 초중반임에도 정기예금이 인기인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신한은행 S드림 예금과 KB국민은행 국민첫재테크 예금의 금리는 각각 1.35%, 1.45%다. 그나마 높은 게 NH농협은행의 왈츠회전예금2(1.68%)다. 이자를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맡기는 개념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시장 변동성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라며 “고객 자산에 대한 위험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역대 최저’ 급락한 예금회전율
금융권 한 고위인사는 “당국 정책을 통해 돈이 풀리면 이를 시중에 실질적으로 유통하는 게 은행들”이라며 “요즘은 오히려 은행들이 돈을 움켜쥐고 있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당국의 경제정책, 특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은행 대출 축소→가계소비 감소→기업매출·생산 감소→가계소득·지출 감소→경기불황 심화가 반복하는데 따른 최악의 디플레이션 스파이럴(spiral·악순환) 우려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