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 넘어 상생]②임대주택·어린이집·소방서?…"아무 것도 짓지마"

학교부지인데도…"특수·대안학교니 허락받고 지어라"
주민 의견수렴 원하더니 주민카페엔 "설명회 자체 막자"
임대주택·소방서까지도…교통·주차난 들며 실력행사
  • 등록 2020-01-28 오전 2:15:00

    수정 2020-01-28 오전 2:15:00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대한민국이 `바나나(BANANA,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현상에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디에든 아무것도 짓지 말라”는 뜻인데, “우리집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님비(Not In My Backyard)보다 광범위하게 확장된 개념이다.

과거엔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하수처리시설, 납골당 등 공해유발시설이나 혐오시설이 갈등의 단골 소재였다면 이제는 기피대상이 넓어졌다. 장애인학교와 장애인·비장애인 문화복합단지는 물론이고 대안학교, 어린이집, 소방서, 임대주택, 신혼부부·청년을 위한 행복주택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마치 돌발사고가 터지는 것처럼 의외의 지점에서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학교 부지인데도, 특수학교는 주민 허락 받아라”


“이제 은평구 주민뿐만 아니라 건물주분께도 무릎을 꿇고 호소를 해야할 처지입니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은 지난 3일 37명을 졸업시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여명학교는 북한 이탈 청소년의 남한 사회 적응을 돕는 대안학교다. 조 교감은 졸업생들이 여명학교에서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대학과 사회로 진출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 한편에서는 설움이 북받치기도 했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뉴타운으로 이전하려고 했던 계획이 지난해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무기한 보류됐기 때문이다. 은평구는 지난달 17일 여명학교 이전 안을 뺀 채 은평뉴타운 재정비촉진계획안을 시 도시재정비위원회에 올려 그대로 통과됐다. 진관동 주민들의 민원이 폭발하자 시간을 좀더 두기로 했다. 당장 내년 2월 남산동 교사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여명학교는 이래저래 난감하다. 주민 설득뿐만 아니라 건물주에게도 학교 이전이 완료될 때까지 시간을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처지다.

서울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여명학교.(여명학교 제공)


“대한민국이 내 딸과 아들을 잘 품어줄 거라 믿었는데 주민들이 배척하는 걸 알면 돌아가신 우리 아이들 부모님은 얼마나 속상할까요. 우리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조 교감은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은평 뉴타운 주민들에게 설명회라도 열 수 있길 요청하고 있지만, 이 조차 대답 없는 빈 메아리일 뿐이다. 은평 뉴타운 입주민들은 “설명회 자체가 안 되도록 (아파트)동 대표님들과 관리소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셔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카페에 올리며 설명회 개최 자체를 무산시킬 태세다. “구청이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해 놓고 정작 주민들은 귀를 닫고 있는 셈이다.

이는 비단 여명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는 3월 개교를 앞둔 서진학교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3년 11월 폐교한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공립 특수학교 신설 계획과 행정예고를 실시했다. 인근 주민들이 즉각 반발하자 시교육청은 대체부지 찾기에 나섰고 마땅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자 2016년 8월 원래대로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특수학교를 수립하겠다는 행정예고를 했다.

그러자 주민 반발이 이전보다 더 거세졌고 급기야 지난 2017년 9월 장애아 학부모들이 학교 개설을 위해 열린 공청회에서 인근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개교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무릎호소에 참여했던 장애아 학부모 B씨는 여명학교 사태를 접하며 강한 기시감을 느낀다고 했다. B씨는 “시교육청에서 행정예고를 하며 의견 수렴기간을 안내했음에도 주민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며 “일반이나 특수 구분 없이 학교를 지을 수 있는 부지라 문제 될 게 없는데도 특수학교에만 주민 동의를 구하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 용산구 맑은숲어린이집에서 한 어린이가 화이트보드를 이용하고 있다.(서울 용산구 제공)


◇공공건물이라도, 이해 당사자 아니면 “내 알바 아냐”


주거와 돌봄, 안전관리 등 공공시설도 기피시설로 취급받기는 마찬가지. 부산광역시가 추진하고 있는 시청앞 행복주택사업을 비롯해 서울 일대에서도 청년임대 주택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 반대로 애를 먹고 있다.

특히 부산시의 경우 도심 교통 요지에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대학생 등을 위한 주택을 짓기로 해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꼽혔으나 최근에는 현지에서도 지역 이기주의의 나쁜 예로 언급할 정도다. 사업 부지 인근 주민들이 교통난과 주차난, 아파트값 하락 등을 이유로 제동을 걸면서 공급 가구 수가 대폭 줄었다. 행복주택사업은 애초 1·2단지 1800가구를 계획했으나 1196세대로 쪼그라 들었고 이 중 692가구였던 1단지는 88가구로 8분의1 토막 났다. 문제는 행복주택 원안이 바뀌면서 국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되고 696억원에 달하는 가욋돈을 투입해야 할 판이다. 이는 부산시가 지난 2018년 발달장애인의 생활안정을 지원하기 위해 5년간 투입하기로 했던 711억원에 버금가는 규모다.

서울 용산구도 지난 2018년 2월 한남동 끄트머리 응봉근린공원 내 맑은숲 어린이집을 개원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린이집을 지을 수 있는 구청 소유의 땅이 없어 공원 안에 짓기로 했는데,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3년여 만에 개원했다. 산책 방해와 교통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주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장년층 희생을 강요한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이집을 확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음에도 `내 알 바 아니다`는 주민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지역 소방서가 없는 금천구도 주민들을 설득한 끝에 내년에 소방서를 완공한다. 시와 소방재난본부는 소방서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수차례 공청회를 여는 등 약 1년여의 설득 작업을 거쳐 건립안을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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