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섣불리 유료화라는 총대를 멨다가는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고 가독성도 떨어져 고민인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증권사별로 리포트 유료화에 대한 방침이 달라 전면적인 유료화는 당분간 어렵다는 전망이다.
과거 증권사의 주요 수익모델이 브로커리지(증권 위탁 매매) 수수료였을 땐 리서치센터 보고서 유료화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당시엔 어느 증권사의 보고서 내용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에 따라 개인투자자나 특히 기관투자자들이 해당 회사를 선택해 거래했다. 리서치센터에서 직접적인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증권사 전체로 볼 땐 수익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셈이다.
그러다 증권사의 수익원이 수수료에서 투자은행(IB) 비즈니스와 대체투자 등으로 이동하면서 리서치센터의 위상이 예전만 못해졌고, 보고서 유료화 고민도 본격 시작됐다. 증권사 리포트를 한곳에 모아서 제공하면서 유료로 아이디를 판매하는 에프앤가이드가 경쟁사인 와이즈에프엔을 지난 2018년 7월 합병하면서 보고서의 가치 하락이 급속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 증권사의 리서치 센터장은 “메릴린치 등 외국계 증권사를 포함한 국내외 투자자들이 에프엔가이드를 통해 보고서를 보는 등 유일한 창구역할을 하고 있어, 증권사를 통한 보고서 직접 노출량이 줄어든 게 사실”이라며 “현재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를 30명 이하로 줄이기 시작한 게 이때(양사 합병)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관투자자가 자금운용을 맡길 곳을 평가할 때 리서치센터 규모란 항목이 있는데, 증권사들이 이를 맞추기 위해 센터에 최소 인력만 배치한 것”이라며 “리서치센터가 수익은 없고 비용만 드는 부서란 인식이 만연한 셈”이라고 전했다.
프리미엄 부담·눈치보기 등에 전면화 어려워
이처럼 위기에 몰린 리서치센터에 보고서 유료화는 숨통을 트이게 할 수단으로 보이지만, 현재까지 이를 단행한 곳은 없다. SK증권, 하이투자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등은 몇몇 보고서의 경우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엔가이드엔 요약 내용만 공개하고 나머지 본문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증권사 계좌를 새로 만들어 자사를 통한 거래를 늘려보고자 하는 방법으로, 보고서에 쓰인 정보를 직접 돈을 받고 파는 유료화의 의미는 아닌 셈이다.
보고서 유료화를 위한 절차적인 토대는 이미 마련돼 있다. 지난 2018년 1월 유럽연합(EU)이 거래 수수료에 포함돼 있던 리서치 보수 분리 내용을 담은 ‘금융상품투자지침2(Mifid II·미피드2)’을 마련한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국내 리서치센터는 금융감독원에 보고서 판매를 부수 업무로 등록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나 소형사나 유료화를 바라지 않는 곳은 한곳도 없을 것”이라면서도 “프리미엄이 붙은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과 고객유치가 필요한 소형사의 경우 혼자 유료화했다간 있던 고객마저 떨어져 나가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악사업처럼 유료 컨텐츠 문화 자리잡아야”
어려운 유료화에 공을 들이기보단 보고서 질을 높이고 전달방식의 고민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곳도 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로 제공되는 증권정보 방송 ‘이리온’에 직접 참여하는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보고서 유료화도 중요하지만 작금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핵심은 질좋은 정보를 만드는 것”이라며 “유튜브에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많은데 전문성을 갖춘 애널리스트들이 차별화된 내용을 만들어 방송하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보고서 유료화는 궁극적으로 전면화돼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컨설팅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애널리스트들이 많다”며 “이들이 쓰는 보고서는 단순히 추정치 등 숫자가 아닌 통찰력으로 유료화해도 경쟁력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SK증권은 애널리스트들이 직접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해 무료 배포하고 있는데 유료화 방향과 상충하지만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는 중”이라면서 “음악사업이 인터넷을 만나 큰 부침을 겪은 뒤 수익모델이 자리잡은 것을 볼 때,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서비스인 보고서 작성도 돈을 지불해야하는 문화가 자리잡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