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공화국 대한민국]②두렵지만..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본지 기자가 정신상담 받아보니…
무기력·피로감 등 작은증세가 우울증 발전
휴식이나 전문의 상담 필요
  • 등록 2012-07-13 오전 8:30:46

    수정 2012-07-13 오전 10:21:42

[이데일리 김도년 김상윤 기자] 정신과 문을 두드리는 건 솔직히 두려운 일이다.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지만,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낙인(烙印)효과도 걱정된다. 성인 6명 중 1명이 정신건강문제를 경험했지만, 정작 전문가에게 상담 또는 치료를 받은 비율은 15.3%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혼자 끙끙 앓다가 병을 악화시켜, 심한 경우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신과 상담에 대한 편견을 떨치기 위해, 지난 10일 본지 기자가 직접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홍진표 교수로부터 본인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없는지 검진 및 상담을 1시간가량 받았다. 아직은 정신과 의사와 단순한 상담만 해도 정신질환자로 규정되는 만큼 취재를 전제로 한 상담을 신청했다. 검사 전 기자는 “살아오면서 입사 부담에 따른 스트레스 외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진단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검사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개발해 세계에서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는 국제진단면담 도구(Composite International Diagnostic Interview·약자 K-CIDI)로 이뤄졌다. 총 25개의 주요 정신질환 진단을 위한 역학조사용 면담도구다. 면담자가 설문지에 정해진 문항대로만 묻게 돼 있어 객관적인 진단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전국 성인 남녀 60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질환 실태조사도 이 도구로 진행됐다.

▲지난 10일 본지 기자가 홍진표(오른쪽)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정신질환 상담을 받은 결과, 심각하지는 않지만 우울증 증세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단 결과는 의외였다. 남 얘기처럼만 들렸던 우울증 증세를 기자도 심하지 않았지만, 일부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 대학 졸업 후 백수 시절, 입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울증상을 보인 것. 당시 언론사 시험에서 수차례 떨어지자, 우울한 기분과 상실감이 상당기간 지속됐다. 잠도 충분히 못 자 새벽에 일찍 깬 적이 많았고,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무기력하고 피곤한 적이 많았고, 특히나 기타연주 등 평소 좋아했던 취미마저 흥미를 잃기도 했다. 물론 취업 후 이런 모습은 서서히 사라졌다.

우울증과 관련된 9개 증상 중 5개 이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 우울증이 있다고 진단을 내린다. 기자는 당시 ▲우울감이 있음 ▲좋아하는 일에 재미를 못 느낌 ▲무기력감·피로감 ▲수면장애 ▲죄책감·자책감 등 5개 정도의 우울증 증세가 5개월 정도 지속됐다. 홍 교수는 “보통 이와 같은 증세가 있을 때 스트레스에 따른 문제일 뿐 병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최근 진단기준으로는 스트레스와 관계없이 우울증으로 본다”면서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3년 전 당시 기자는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홍 교수는 “다행히 취업과 동시에 우울증이 저절로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만큼 그땐 충분한 휴식을 취하거나 전문 상담을 받는 등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 우울증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결과”라고 말했다.



과거 교통사고 경험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일부 있었다. 기자가 최근 운행 중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를 목격하면서 잠재된 과거의 교통사고 스트레스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기도 했다. 이후 운전을 할 때 앞차가 갑자기 비상등을 켜거나 정지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땀이 나거나 몸이 떨리는 등 과민반응이 나타났다. 다만, 평소에 짜증을 많이 내고,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한 상태는 아니다. 홍 교수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항상 가슴이 두근거리고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사건을 회피하려는 증세가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다만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때 일부 불안감을 느끼는 재체험 증상 정도는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외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술을 많이 먹긴 했지만, 알코올남용 및 의존(alcohol abuse, dependence) 증세는 없었다. 술로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거나 만취상태에서 몸싸움이 일어나는 경우, 그리고 기타 위험한 행동이 나타나 법적인 문제가 생긴 적이 있을 때 이런 증세가 있다고 본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만큼 보통 1~2가지 증상은 나타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내년부터는 전국민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이 실시된다. 취학 전에는 2회, 초등생 2회, 중·고등학생 각 1회, 20대 3회, 30대 이후 연령대별 각 2회씩 이뤄진다. 시간과 예산 문제로 면담을 통한 K-CIDI 검사보다는 우울증 선별 검사(9-item Patient Health Questionnaire·약자 PHQ-9)가 주로 이용될 전망이다. 이외 아이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검사, 성인은 알코올중독 검사 등이 함께 이뤄질 예정이다. 건강보험공단이 검진도구를 우편으로 개인에게 발송하면, 이를 기재해 회신하는 방식이다.

홍 교수는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내년부터 전국민 정신건강검진을 실시한다”면서 “정신질환자의 범위도 입원치료 등이 요구되는 중증환자로 축소되는 만큼 자신의 정신건강상태를 검사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전문의 상담을 받는 등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인식 수준이 제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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