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그렇게 둘째를 낳으라고 하더니…"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 등록 2015-12-26 오전 8:00:00

    수정 2015-12-27 오전 10:17:13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대리인 문제의 태동은 경영학입니다. 전문경영인(대리인)은 주주(주인) 대신 회사를 이끌지만, 꼭 주주를 위해서만 최선을 다하지는 않지요. 전문경영인의 시야는 단기 실적에 맞춰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주주의 이익은 뒷전이고 자신의 생존부터 챙기는 고위임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요.

사실 대리인 문제는 경영학만의 주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사회 거의 모든 조직에 해당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정치권인 것 같습니다. 주인(국민)의 요구는 안중에도 없는 대리인(국회의원)이 수두룩하지요. 보통 비(非)전문가인 주인은 전문가인 대리인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속속 알 길이 없습니다. 4년 내 치적 쌓기에만 급급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나랏돈을 함부로 쓰는 정치인은 너무 많습니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청탁에 열을 올리는 사례도 적지 않지요. 대리인 문제는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와 쌍둥이입니다.

누리과정 논란, 대리인 문제의 결정판

최근 불거지는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보육·교육) 논란은 가히 대리인 문제의 결정판입니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여야 의원과 시·도 교육감을 직접 뽑고, 정부부처 공무원에 간접적으로 나랏일을 맡깁니다.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할 공복(公僕)입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정작 해야 할 일은 않는 게 누리과정의 현실입니다. 여야와 정부는 애초 선거(2012년 총·대선)만 보고 누가 봐도 어설픈 정책을 만들었고, 시도 교육청과 시도 의회는 엄연히 법령이 있음에도 “돈 없다” “배째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누리과정을 취재하면 많이 듣는 얘기가 있습니다. “중앙이니 지방이니 하면서 싸우는데 왜 저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국민이 보기에 중앙이든 지방이든 그냥 한 정부라는 겁니다. 월급 받고 내는 소득세나, 밥 사먹고 내는 부가가치세나, 내 집 장만하고 내는 취득세나, 한 해 두 번 내는 자동차세나, 어디로 흘러들어가 누가 쓰는지 관심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겁니다. 꼬박꼬박 낸 세금에 맞게 서비스를 해달라는 요구일 뿐입니다. 나랏일을 위임받은 대리인들에게 이건 어떻게든 해야 하는 의무이지요.

누리과정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돈이 나갈 수 있는 문제입니다. 매월 정부 지원금이 20여만원이니, 누리과정 혜택을 받는 자녀가 둘이라면 갑자기 60만원 가까이 더 지출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둘째를 낳으라고 하더니” “그럴 바에야 집에서 키우지”라는 직장맘의 이야기가 적지 않습니다. “높은 전세금에 이사 가고 대출이자에 허리가 휘는데 정말 너무 한다”는 30·40대 엄마들의 아우성은 과장된 게 아닙니다.

복지정책이 ‘계파전쟁’보다 중요하다

저출산의 공포는 정부당국도 알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일하는 인구도 줄고 돈 쓰는 인구도 줄지요. 우리경제가 밑둥째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정부당국이 저출산 대책을 잇따라 발표하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 대책은 종종 웃음거리가 되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저출산의 이유로 늦은 결혼을 꼽았습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게 노동개혁입니다. “이 문제(청년 일자리)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지고 삶에 쫓겨가는 일상이 반복될 것입니다.” 물론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아이를 낳자”는 분위기는 영유아 양육에 무리가 없어야 하는 게 첫 번째라고 봅니다.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리과정 같은 정책을 더 발전시키면 되는 것이지요. 최근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이를 방증하는 겁니다.

대리인 문제의 해결책을 경영학 교과서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대리인을 위해 일하는 게 주인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하라.” 기업은 ‘스톡옵션’이란 제도가 있지요.

누리과정 논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야와 정부부처, 시도 교육청이 ‘진실하게’ 해결책을 논하게 할 장치가 현실적으로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무서운 건 투표권이 있어서입니다. 마침 몇 달 후 총선입니다. 대선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이번 논란의 경과를 보면서 한 표를 행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저출산 고령화 시대, 복지정책은 알량한 ‘계파전쟁’ ‘진영싸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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