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족발 남일 아냐"…서촌 가게 10곳중 7곳 퇴출 위기

서촌 곳곳서 건물주와 세입자 간 임대료 마찰 빚어
맘상모 "서촌 상인 70% 잠재적으로 내쫓길 위기"
전문가들 "선진형 매출기반 임대차 계약 등 도입 필요"
  • 등록 2018-06-26 오전 6:30:00

    수정 2018-08-16 오후 4:00:45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원들이 지난 1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촌의 ‘본가궁중족발’ 앞에서 법원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가게 앞을 막아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슬기 황현규 기자] 가게 임대료 문제로 인한 임차인과 건물주 간의 갈등이 폭행사태로 번진 서울 종로구 서촌 ‘궁중족발’ 사건. 이 사건이 인근 업주들에겐 남일이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인적 드물던 서촌은 이제 관광객이 몰리는 명소가 됐지만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날 위기인 가게가 한둘이 아니다. 서촌내 대다수 가게가 영업을 시작한지 10년 이상 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 상가법은 최초 5년간의 임대차 계약만 보호하고 있다.

서촌 명물 ‘봉평막국수’도 4년째 소송중

서울 종로구 서촌 필운동에서 9년째 장사 중인 유명 맛집 ‘봉평막국수’ 사장 김모(47)씨는 현재 건물주와 4년째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다. 건물주는 계약기간 5년이 지나자 곧장 김씨에게 나가라며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9년 전 서촌은 개발되지 않았던 동네여서 죽은 상권이나 다름 없었다”며 “다 쓰러져가는 한옥을 고치고 열심히 일해 상권을 살려놨더니 권리금도 못받고 쫓겨날 처지”라고 한탄했다.

김씨는 가게 자리에 권리금 2억5000만원을 내고 들어오겠다는 상인과 양도양수계약서까지 썼다. 하지만 하지만 건물주는 건물을 팔 생각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물주는 인근 부동산중개업체에게 건물을 18억원에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1심 재판부는 작년 7월 강제집행을 허가했고 김씨가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2심 결과는 올해 가을쯤 나올 예정이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계약기간이 끝났으니 건물주가 나가라면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건 안다. 그래도 권리금은 받아야 다른 곳에서 다시 가게문을 열 수 있지 않겠냐”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9년 전 권리금 5000만원을 주고 이 곳에 입주했다.

시민단체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서촌에서 임대기간 만료 등으로 인해 법적분쟁을 거치지 않고 퇴거하거나 내쫓길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상인은 70%나 된다(월세를 2배 올리는 등 임대인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고 장사를 하고있는 상인도 포함). 단기간에 상권이 급성장하면서 주변 부동산가격과 임대료가 크게 오른 탓이다. 맘상모는 ‘궁중족발 사태’ 이후 상담을 신청해온 서촌 상인이 평소와 비교해 3~4배 증가했다고 전했다.

맘상모 관계자는 “서촌에 있는 가게 대부분이 영업을 시작한지 10년 이상 지나서 세입자가 대항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다”며 “건물주의 계약연장 거부로 내쫓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리한 월세인상 요구나 심지어 세입자를 쫓아내고 건물주가 직접 가게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서촌 필운동에 있는 ‘봉평막국수’. 9년째 영업중인 이 가게의 주인은 현재 건물주와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다.(사진=이슬기 기자)
전문가들 “임대차 계약 보호기간 연장은 미봉책”

현행 상가법은 임대차 계약 이후 5년까지는 건물주가 세입자의 재계약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궁중족발의 경우 7년이 지나서 건물주가 월세를 297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4배 이상 올려도 대항할 수단이 없었다. 궁중족발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갈등은 12차례에 걸친 강제집행을 실시하는 충돌 끝에 세입자가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하는 사태까지 비화됐다.

궁중족발 사태 이후 국회는상가법 개정 논의를 시작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약갱신권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임대료 인상시 상한선을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임대보호 기간을 늘려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가법 임대 보호 기간을 늘려주는 것은 한시적 방안일 뿐이다. 그 기간이 끝나면 또다시 세입자와 건물주 간의 갈등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세입자를 내쫓지 않는 건물주에게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거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각한 관광지역에 한해 정부가 세입자들에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방법 등을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저금리 대출은 높아진 임대료에 대한 세입자의 부담을 줄이고 건물주도 본인이 원하는 임대료를 받을 수 있어 시장경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도 “월세를 매출에 기반해서 주는 ‘선진형 매출 기반 임대차 계약’을 한다면 월세를 올리려는 건물주와 세입자 간에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며 “다만 이를 위해 정확히 매출을 따질 수 있도록 공정한 조세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상가 등의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했다. 지주·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골목에서 서촌 궁중족발 사장 김모씨가 건물주 이모씨에게 망치를 휘두르는 모습. 서울 강남경찰서는 김씨를 현행범 체포해으로 조사하면서 살인미수·특수상해 등 혐의를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2016년부터 임대료 인상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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