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아온 `폰트 저작권 위반`…법무법인 무차별 합의금 사냥

법무법인, 서체 저작권법 위반 내용증명 발송
저작권법 위반 아님에도 겁먹고 합의금 지급
"폰트, 저작권법 아닌 디자인보호법 적용해야"
  • 등록 2018-12-28 오전 6:11:00

    수정 2018-12-28 오전 7:49:04

한 법무법인이 발송한 저작권법 위반 관련 공문. (사진=독자 제공)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공공기관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일하는 고모(29)씨는 얼마전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등기를 받고 당황했다.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증명이었다. 고씨는 “외주업체가 제작한 포스터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데 어느 서체업체의 폰트가 포함돼 있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었다”며 “법무법인이 통장사본을 보내주며 200만원 가량의 금액을 입금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법무법인이 서체업체로부터 합의, 소송 등 권한을 위임받았다며 저작권 침해에 관한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한 정확한 확인 없이 내용증명을 보내 저작권법에 대해 잘 모르는 업체나 개인이 해당사항이 없는데도 당황해 곧바로 합의금을 입금하는 피해 사례까지 생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무법인과 서체업체들이 저작권법을 남용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폰트가 저작권법 적용을 받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저작권법 모르는 업체·개인 상대로 기획소송까지

최근 법무법인들이 개인이나 업자가 저작권법 침해를 했다는 내용증명을 보내며 고액의 패키지 구매나 합의금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 사용자 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도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증명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저작권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법무법인의 내용증명을 받고 바로 수백만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문제는 저작권법 위반 사례가 아님에도 법무법인이 저작권법을 잘 모르는 자들을 노려 내용증명을 다수 발송해 합의를 유도하는 소위 `기획소송`을 일삼는 것이다. 현행법상 저작권법 위반은 폰트가 아닌 폰트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에 해당한다. 디자인을 업체에 맡긴 경우에는 제작 업체에 서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간판 등 이미지 자체에 폰트가 쓰인 경우에는 저작권 위반이 아니다.

제작업체가 서체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도 온라인 게시에 대한 권한이 없는 경우 저작권법 위반이 아닌 계약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모씨는 “외주업체에 맡긴 제작물 때문에 지금까지 세네 번정도 내용증명을 받아봤는데 한 가지 서체를 사용했음에도 해당 회사의 모든 서체가 포함된 패키지를 구매하라 했다”라며 “법무법인들이 실제로 민사, 형사소송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내내 부담을 느꼈다”고 말했다.

폰트를 온라인에서 쉽게 받을 수 있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다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사용자는 “완벽한 무료폰트가 아니면 처음부터 비용지불을 하고 받을 수 있게 하거나 기업과 폰트마다 다른 저작권 용도 등 표기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폰트 배포자 규제로 충분…저작권법보단 디자인 보호법 적용”

일각에서는 이같은 법무법인, 법무법인에 권한을 위임한 서체업체들이 저작권 남용을 일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법원의 판례도 의견을 표시하는 도구로 쓰이는 서체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강조한다.

현재 판례는 폰트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진 않지만 폰트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은 인정하고 있다. 폰트 제작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같은 판례도 문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해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포스터 등 온라인 파일 경우 결과물 자체지만 편집을 쉽게 하기 위해 임베딩을 하는데 이 작업도 폰트 프로그램이 복제된 것으로 보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진근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폰트에 관해 저작권이 아니라 디자인보호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자인보호법은 배포자에 대해 처벌한다. 정 교수는 “폰트 파일은 그림인데 프로그램 저작물로 보호하고 있는 게 잘못이다. 또 어려운 법리를 전개해 이용자들이 법률을 이해하지 못하고 위법과 적법의 영역을 알기 힘들다”라며 “법무법인과 서체업체가 기획소송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이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폰트를 배포하는 업자를 규제하면 충분하다. 사용하는 사람에게까지 책임을 물리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앞으로 판례를 통해 폰트에 대한 법 적용을 변경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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