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오해와 불신이 낳은 1만 여성 혜화역 시위

  • 등록 2018-05-23 오전 6:00:00

    수정 2018-05-23 오전 8:35:09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공정한 수사와 몰카 촬영과 유출, 유통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경찰은 기껏해야 500명 정도가 모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최측도 많이 모여야 5000명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여성들의 분노는 경찰과 주최 측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컸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앞엔 붉은 옷을 입은 여성 1만 2000명이 몰려들었다. 경찰은 혜화역 2번 출구 앞이 마비되자 당황했다. 통제구간을 인도에서 버스전용차선으로, 버스전용차선에서 그 옆 차선으로 점차 넓혔다. 혜화동에서 여성단체들이 개최한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 얘기다. 이들은 경찰이 성범죄 수사에 남성엔 관대하고 여성에는 엄격한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빛은 싸늘하기만 하다. 몰카사건의 남성 피의자 구속률이 여성 피의자보다 3배나 높고 사건에 따라 하루나 이틀만에 검거하기도 한다며 이들이 ‘오바’한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은 이번 홍대 누드모델 사건은 한정된 장소에서 제한된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피의자 특정이 쉬웠고 휴대전화를 한강에 버리는 등 증거를 인멸해 구속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피의자가 여성이어서 특별히 수사력을 집중하거나 구속한 게 아니란 것이다.

사실 이번 사건의 핵심에는 독자의 관심 끌기에 급급한 언론과 언론의 눈치를 보는 경찰이 있다.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피의자가 포토라인에도 서고 관련 수사가 12일 만에 신속하게 마무리된 것도 언론의 영향이 컸다. 언론 종사자들에게 불법촬영 피해자의 10명 중 8명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여성이 피해자인 몰카범죄는 “기사꺼리가 안 된다”는 말과 같은 얘기다.

‘NEWS’.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이다. 언론종사자들은 보다 신선한 얘깃거리를 퍼 올려 기사로 쓴다. 언론이 수많은 여성 피해자들의 목소리보다 남성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다. 여성 치마 속을 불법 촬영한 의학전문대학원생 기사는 25건밖에 안 되지만 홍대 누드모델 기사가 1000건이 넘는 이유도 그래서다.

언론이 주목하면 경찰은 긴장한다. 온 세상이 주목하고 있는데 수사가 지연되거나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망신을 당할 수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경찰 수뇌부도 자연스레 사건에 관심을 갖는다. “피해자가 남자라서 빨리 해결됐다”는 말은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성들의 오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성범죄 기사를 자극적으로 보도해 어떻게든 독자를 끌어보려는 언론과 그런 언론이 만든 여론의 눈치를 보며 부랴부랴 수사하는 경찰의 몫이다. 1만 여성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그들이 세상을 믿지 못하게 만든 우리의 행태를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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