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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개월차인 이명신(가명·32)씨도 양가 부모님을 부르는 호칭에 불만이 많다. 이씨는 “나는 시부모에게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높이는데 남편이 부르는 ‘장인어른’, ‘장모님’은 높임말이 아니다”라며 “결혼한 여성은 늘 ‘시댁’이라고 부르는데 남성을 누구도 ‘처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관습으로 내려온 호칭이 부부간에 성차별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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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활발해지고 남녀평등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쓰는 호칭이 과거 부계 중심 사회에서 만들어진 터라 남성의 가족만 지나치게 높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10~60대 국민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5%은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로 높이고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로 높이지 않고 부르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집안을 가리킬 때 ‘시댁’으로 높여 말하고 결혼한 여성이 아내의 집안을 ‘처가’라고 평대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는 비율 역시 59.8%에 달했다.
한 청원인은 “한국사회의 가부장 의식과 악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이유로 호주제가 폐지된 지 13년이나 지났는데 양가 불평등 호칭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며 “사촌오빠랑 결혼한 언니는 왜 열살도 더 어린 내게 꼬박꼬박 ‘아가씨’라고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서로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준언어예절도 성차별적 표현 여과없이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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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언어예절에 따르면 결혼한 남성이 친부모와 동기, 친척에게 처부모를 가리킬 때는 ‘장인’, ‘장모’라고 부르는 게 원칙이다. 반면 결혼한 여성이 친정 쪽 사람과 그 밖의 사람에게 시부모를 가리킬 때는 ‘시어머님’, ‘시아버님’을 추천한다.
문제는 표준언어예절이 말그대로 호칭 기준이 되면서 각종 교과서나 시험문제, 포털사이트에서도 표준언어예절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내 성차별적 호칭을 바꿔달라는 목소리가 커지자 이에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실태조사 후 올해 가족 내 차별적 어휘를 다듬기 위한 심층연구를 진행 중이다.
박미영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연구사는 “여성들이 친족 내 부르는 호칭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에 대한 심층연구를 하고 있다”며 “예컨대 장인과 시아버지를 모두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허용해도 어휘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등을 전문가와 학계 의견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은 내년에 연구 결과물을 발표할 예정이다.
실제 영어권에서 남편과 아내의 형제는 ‘sister-in-law’와 ‘brother-in-law’ 두가지 뿐이며 생활호칭은 모두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