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43일의 기록]"웃기려고 나왔다!"…750만 촛불 일등공신 '풍자와 해학'

무겁던 집회 문화 풍자와 해학이 민주주의 축제로 바꿔
세월호 고래·꽃벽 등 시민들과 함께하는 집회문화 창조
  • 등록 2016-12-12 오전 6:30:00

    수정 2016-12-12 오전 8:40:17

지난 1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 최진 3차 촛불집회에 앞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청년총궐기’ 사전집회에서 학생들이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의 마스크를 쓴 채 국정농단 사태를 풍자하고 있다. (사진=전상희 기자)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2016년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촛불집회는 ‘저항’과 ‘축제’란 이질적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았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민심을 표출한 광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다양하고 기발한 풍자다. 풍자와 해학은 운동권과 시민단체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집회와 시위를 일반 시민들도 마음 편히 다가갈 수 있는 민주주의 축제로 바꿔놓은 일등공신이다.

국민들을 실소하게 한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과 길라임, 비아그라 등 시민들을 어이없게 한 청와대발(發)소재가 끊이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10월 29일 처음 열린 촛불집회의 풍자 키워드는 ‘꼭두각시’다.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기소)씨가 대통령을 대신해 연설문을 작성하고 국가 정책 수립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최초로 불거진 뒤였다.

당시 집회에는 박 대통령 가면을 쓴 학생이 모형 TV에 서서 ‘1차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하면 최씨 가면을 쓴 다른 학생이 이 학생과 연결된 실을 잡아당기면서 인형극 ‘마리오네트’를 연출했다. ‘이게 나라냐’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등장했고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접한 만큼 표현은 다소 무거웠다.

2·3차 촛불집회부터 본격적인 패러디가 펼쳐졌다. ‘이러려고 세금 내고 국민 했나, 자괴감이 든다’ 등 박 대통령의 2차 담화를 비꼰 ‘자괴감 시리즈’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

‘배터리도 5%면 바꾼다’ ‘지지율도 실력이야! 니 부모를 탓해’ 등 웃음을 자아내는 문구가 담긴 피켓이 등장했다. ‘민주묘총’과 ‘전견련’, ‘트잉여운동연합’ 등 이색깃발 각축전이 벌어졌다. 벌레를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장수풍뎅이 연구회’ 깃발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이름 ‘길라임’을 가명으로 쓰며 차움병원 VIP시설을 이용했단 보도가 나온 뒤 시민들은 드라마 남자 주인공 현빈의 트레이드 마크인 반짝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와 “길라임씨 하야하세요”를 외쳤다.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는 김진태 새누리 의원의 발언 이후 촛불집회에 방풍 촛불과 LED 촛불, 횃불이 등장했다.

5·6차 집회에선 상·하위 문화의 조화가 절정에 달았다. 등에 노란 종이 돛단배를 올리고 꼬리엔 노란 리본을 단 풍선인 ‘세월호 고래’가 광장의 100만 인파 위를 헤엄쳐 다녔다. 제작자인 건축가 김영만(54)씨는 “더 많은 국민이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웃픈(웃기고 슬픈) 풍자’도 계속됐다. 청와대가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고산병 예방 차원에서 샀다”고 해명하자 시위현장에는 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 ‘하야하그라’ 깃발이 등장해 시민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박 대통령이 태반주사 등 미용 목적 주사를 맞았다는 의혹 보도는 ‘청와대 주사파 척결 운동연합’ 결성으로 이어졌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튿날인 7차 집회에선 박 대통령에 대한 풍자가 더 과감해졌다. 꽃 스티커로 물들었던 경찰 차벽은 박 대통령이 철창에 갇힌 모습의 그림과 ‘이러려고 의경했나’ 등의 글귀가 적힌 풍자 스티커 등으로 도배됐다. 한 시민은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의 인형탈을 쓴 채 행진 대열에 참여했다. ‘박하(박근혜 하야)사탕’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푸드트럭도 눈에 띄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위 주체가 있었던 과거의 운동권 집회에서 모두가 주체가 된 지금의 시위에서는 젊은 세대 특유의 명랑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문화가 결합돼 다양한 풍자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진행된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 5차 촛불집회에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풍자한 ‘하야하그라’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6차 촛불집회가 진행된 지난 ㄴ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 설치된 경찰차벽에 한 어린이가 차량에 붙은 꽃 스티커를 만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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