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편지 1500통·등기 118개·택배 35개…집배원의 '극한 하루'

한달 평균 57시간 초과근무, 연차는 연평균 2.7일 뿐
비포장도로 달리다 허리병, 다세대주택 오르내리다 무릎병
"휴가가면 동료가 내 구역까지 배달..아파도 참고 출근"
우정본부 260명 증원..집배노조 "4500명은 늘려야"
  • 등록 2017-07-09 오전 8:30:04

    수정 2017-07-09 오후 11:00:38

인천 계양우체국 집배실 직원들이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 배달 업무에 앞서 우편물 분류 작업에 여념이 없다. (사진=김성훈 기자)
[인천=이데일리 김성훈 기자]인천 계양우체국 2층 집배실. 배달 업무가 시작되는 오전 9시가 되려면 1시간 이상 남았지만 집배원들은 우편물 확인·분류 작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오전 8시 45분쯤 분류 작업을 마친 우편물들을 오토바이와 트럭에 싣고 나서야 아침 인사가 오갔다.

업무 시작 20여분 만에 땀 비오듯…점심 거르기 일쑤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며 숨을 고르기도 잠시, 오전 9시가 되자 오토바이 60여대가 속속 우체국을 나서면서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하루 기자와 동행하기로 한 올해로 경력 29년차 집배원 원재만(53)씨는 담당 관할 구역인 효성동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오토바이 뒤 우편물 적재함에는 편지와 지로용지 1500통, 등기우편물 118개, 택배 35개가 담겼다. 하루 배달 물량치곤 상당히 많아 보인다는 말에 “명절 등 성수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원씨는 “직접 서명을 받는 착불이나 등기우편물을 얼마나 빨리 소화하느냐에 따라 당일 업무 성패가 갈린다”고 했다.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에 들어서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대부분 주택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탓에 쉴 새 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원씨의 얼굴은 20여분 만에 금세 땀범벅이 됐다. 집에 사람이 없어 헛걸음하기 일쑤였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온도계는 30도를 가리켰다.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점심을 챙겨 먹을 기미는 없었다. 원씨는 “오전 업무량을 채우지 못해 점심을 거르는 것은 집배원들에게 흔한 일”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인천 계양구 효성동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 들어선 원재만 집배원이 건물 곳곳을 누비며 배달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김성훈 기자)
연차는 ‘그림의 떡’…고질병에 감정 노동 스트레스까지

“정말 따라 올 수 있겠습니까.”

오후에 만난 다른 집배원 서재환(48)씨는 “오랜 시간 비포장 도로를 달려야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거듭 물었다. 서씨는 경기 김포시에 인접한 계양구 이화동의 우편배달 업무를 맡고 있다. 지역 특성상 집과 집 사이 거리가 멀어 오토바이 운행 거리가 하루 평균 45㎞에 이른다. 이날은 자리를 비운 동료 2명의 배달 업무를 대신하는 ‘겸배’도 예정돼 있어 훨씬 더 긴 거리를 달려야 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느라 흙먼지를 뒤집어 써야했다. 오토바이는 쉴 새 없이 출렁였다. 서씨는 “오랜 시간 오토바이에 앉아있다 보니 허리 질병에 시달리는 집배원들이 적지 않다”며 “휴가를 내고 싶어도 대신 배달을 맡아야 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해 고통을 참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걱정은 더욱 커진다. 서씨는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탈진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인천 계양우체국 소속 서재환 집배원이 계양구 이화동 우편물 배달 업무를 위해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다. (사진=김성훈 기자)
고강도 육체·감정노동에 “인력 충원해야”…미래부 소속 한계 지적도

5월 고용노동부가 대전 유성·아산·세종·서청주 지역의 우체국 업무 환경 실태를 조사한 결과 초과 근무 시간이 월 평균 57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들이 사용하는 연차 사용일 수는 연 평균 2.7일에 그쳤다. 다른 지역의 우체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감정 노동에도 시달린다. 계양우체국 관계자는 “일부 고객들은 ‘왜 집에 없을 때 왔냐’며 전화를 걸어 따지기도 한다”며 “온갖 불평·불만에 시달리는 등 감정적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집배원들의 사망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올해 2월 충남 아산 영인우체국 소속 집배원 조모(44)씨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데 이어 두 달 뒤 지난 4월 아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곽모(47)씨도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경기 가평우체국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3명의 집배원이 유명을 달리했다. 올해 들어서만 8명의 집배원이 뇌심혈관질환과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과중한 업무와 인력 부족 등에 대한 비난여론이 커지자 우정사업본부는 올 상반기 집배원을 160명 증원했다.하반기 추경사업(추경)을 거쳐 100명을 추가로 뽑는다.

하지만 전국집배노동조합(집배노조) 측은 “과로사 등을 막기 위해서는 4500명 정도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미래창조과학부 소속이다 보니 인력 충원 계획 등 정책 마련에 제한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최근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소방본부와 질병화재본부의 청(廳) 승격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비(非)권력 서비스 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개선 논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 등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집배원 과로사 방치 미래부장관·우정사업본부장·고용노동부장관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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