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혈세로 연명 '좀비기업'..고통 따라도 퇴출이 먼저다

[초혁신시대, 산업의 미래는]
④혁신성장 가로막는 정부지원
선거철마다 '퍼주기式' 지원 정책
무분별 지원에 산업생태계 망가져
정상 기업의 고용· 투자에 악영향
  • 등록 2018-01-24 오전 6:00:00

    수정 2018-01-24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서윤 기자]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1990년대초 부동산 버블 붕괴 후 일본 은행들은 자본적정성 훼손을 우려해 정상 기업 여신은 축소했지만, 부실기업에 대해선 오히려 대출기간 연장· 이자 면제 등을 통해 자금을 추가 지원했다. 그 결과 버블 붕괴 이후 4~6% 내외였던 좀비기업(성장한계기업) 비중은 1990년대 후반 14%까지 치솟았다. 이는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역동성을 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좀비기업’의 연명을 돕도록 설계된 각종 정부 지원정책은 속도를 수반한 혁신이 강조되는 초(超)혁신 시대에서 우리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걸림돌로 지적받는다. 좀비기업들이 ‘창업-성장-퇴출’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의 신진대사를 저해하고 있다는 걸 민관(民官) 모두 인정하고 있지만,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 눈치보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정책 금융 등을 ‘퍼주기식’으로 남발해 이들의 퇴출을 막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난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중소기업 육성사업만 1347개, 16조5800억원에 달할 정도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 지난해 11월 열린 ‘전국 일자리위원회 워크숍’에서 “저성장·저고용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호·육성 위주의 중소기업 정책에서 벗어나 될성부른 기업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명 위주의 정부 정책은 정상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다.

3000개 넘는 좀비기업, 경제 걸림돌

정책 금융 등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유망 중소기업 위주로 이뤄진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부실기업을 제대로 솎아내지 않아, 사업성이 없는 기업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이 문제다. 자체 회생 능력이 부족한 좀비기업들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는데 혈세(血稅)가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지원의 ‘단맛’을 본 좀비기업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노력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중소기업 정책금융 평가 결과를 보면,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중소기업의 생존율은 5.32%포인트 올랐지만, 생산성은 지원하지 않은 경우보다 4.92%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 좀비기업 수는 지난 2013년 3000개를 넘어선 후. 한 번도 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국내 외부감사 대상법인 가운데 3년째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갚고 있는 좀비기업(한계기업)은 3126개(2016년말 기준)로 집계됐다. 2010년(2400개)과 비교하면 30% 늘어난 것으로, 전체 국내 외부감사 대상법인의 14.2% 수준이다. 더 작은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연명만 하는 기업 비율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좀비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정상기업들에게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KDI에 따르면 금융지원을 받은 좀비기업 자산이 10%포인트 증가할수록 정상기업의 고용증가율과 투자율은 각각 0.53%포인트, 0.18%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좀비기업이 한정된 시장 수요를 잠식하다보니, 노동·자본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탓이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은 “기업 구조조정이 지체되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역동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명에만 급급..성장 멈춘 中企

역량 강화보다는, 생명 연장에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은 중소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근원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중소기업 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은 61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56위에 그쳤다. 대기업 대비 노동생산성도 29.7% 수준으로, 독일(60.8%), 일본(56.5%) 등 주요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중(中)기업으로 크지 못한 채 성장이 멈춘 ‘소(小)기업’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체 가운데 종업원 50인 이상인 중기업의 비중은 2.7%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8.4%), 독일(9.8%), 일본(6.0%) 등 주요 선진국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다.

소기업 수가 많다보니, 중기업 이상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양질의 일자리 비중도 상대적으로 낮다. 50인 이상 사업체의 고용비중은 한국이 44.1%로, 이탈리아(52.8%), 그리스(48.6%), 포르투갈(53.7%) 등 남유럽 국가들과 비슷했다. 반면, 미국(81.1%), 독일(79.9%), 일본(66.2%) 등은 기업규모가 커질수록 고용비중이 비례하는 ‘우상향’ 패턴을 보여준다.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중소기업의 존속과 보호에 급급하는 정책 틀에서 조속히 탈피하고 각 부처에 분산된 지원제도를 경쟁력 초점으로 통합조정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면서 “중소기업의 성장과 투자, 생산성 상승, 신규고용 창출 등 성과 관리 중심으로 지원 정책의 방향과 지원기관의 평가기준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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