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야 재벌개혁을 말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법인세율 인상이 당론일 정도이니깐요. 특이한 건 새누리당까지 대기업집단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근 당 공개회의에서 “문제가 있는 재벌총수는 올해 국정감사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했지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새누리당은 원래 국감에서 대기업 문제를 진정성있게 다루려면 사안을 잘 아는 최고경영자(CEO)나 담당 임원을 불러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기 때문이지요. 원내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도 “올해는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여의도 국회에 부쩍 늘어난 대기업 대관인력
‘쇼’에 강한 정치인들의 행동은 다 이유가 있겠지요. 그에 앞서 대기업집단의 총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2009년부터 약 4년간 삼성·SK·LG 등 대기업집단을 주로 취재했는데요. ‘총수’ ‘오너’의 무게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정도의 표현이면 될까요. 직장인으로 아무리 성공해도 오너를 넘을 수는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대기업집단의 대외협력 담당자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오너 일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최근 여의도 주변에는 대기업집단의 대관(對官) 인력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습니다. 목적은 비슷합니다. 총수를 국감장에 세우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지요. 대기업집단의 최고 자산인 총수가 여의도에서는 최대 약점인 셈입니다.
새누리당이 갑자기 재벌개혁을 얘기하는 건 이 약점을 파고든 겁니다. 자신들이 주도하는 노동개혁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요. 국감장에 서기 싫으면 일자리 창출 등에 협조해달라는 뜻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매 정권마다 총수들이 우루루 청와대에 몰려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요.
노동개혁 위한 조급한 재벌개혁 카드…미봉책 아닐까
문제는 정치권과 대기업집단의 이런 관계가 실제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저는 부정적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향수는 짙게 배어있는데, 그 진정성은 자꾸 의구심이 듭니다. 오히려 ‘아직도 이러고 있나’ 싶을 정도로 비애감이 들기도 합니다.
일단 새누리당의 재벌개혁이 주먹구구식이라는 게 눈에 보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맞춰 필요할 때만 대기업집단을 골라서 때린다는 말이지요. 또 서비스업 발전에 명운을 거는 것 같더니, 어느새 제조업도 살려야 한다고 합니다. 서비스업은 필연적으로 ‘질 낮은’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일까요. 오락가락합니다. 노(勞)와 사(使)를 한자리에 앉혀놓고 어떻게든 노동개혁에 합의했다고 사진 찍는 게 최우선과제 같이 보일 정도입니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데, 조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요.
그 후유증은 지난 공무원연금 개혁 때 이미 드러났습니다. 새누리당은 합의에 쫓겨 갑자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끌고 들어왔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당시 합의를 주도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부터 연금은 이젠 말도 안 꺼내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말로만 국가를 위하지, 결국은 잇속 챙기기 라고 비판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여야가 합의만 했다고 해서 그게 공적이 되는 게 아닌데 말이지요.
대기업집단이라고 바보는 아닐 테지요. 적당히 구색만 맞추려는 흔적이 보입니다. 벌써부터 삼성 등에서 발표한 대책이 ‘인턴 늘리기’라는 비아냥이 들립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지요. 정치권이 윽박지른다고 갑자기 당초 계획했던 채용에서 확 늘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여권이 추진한다는 노동개혁이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표심(票心) 때문에 내년 총선 전, 즉 올해 안에는 꼭 끝낸다고 하네요. 보수정당이 재벌개혁까지 한다고 하니 급하긴 급한 것 같습니다. 저는 새누리당이 벌써부터 지고 들어간 느낌이 듭니다. 국민연금까지 끌어들였다가 손을 놓아버린 ‘미봉책’ 공무원연금 개혁이 자꾸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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