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느 자영업자의 한숨

  • 등록 2013-09-30 오전 8:05:30

    수정 2013-09-30 오전 8:05:30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제보할 게 있습니다. 직접 만나 설명하고 싶은데요.”

편의점 본사가 밴사로부터 매년 수백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기사를 본 한 독자에게 얼마전 이메일을 받았다. 이름이 꽤 알려진 모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을 운영하던 사람이다. “편의점만 리베이트를 받은 게 아닙니다. 웬만한 대기업은 다 받고 있어요.”

그가 프랜차이즈 본사와 맺은 계약서를 보니 가맹점주는 그 흔한 ‘을(乙)’도 아닌 ‘병(丙)’이었다. 200만~300만원이면 될 포스(POS·판매시점관리) 장비를 1000만원을 들여 매장에 설치했고, 프랜차이즈 본사에 포스 유지보수비로 매월 5만원 가량을 냈다. 포스에 문제가 생겨도 가맹점주는 본사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계약서가 그랬다. 해당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맹점주들에게 돈을 받아온 것은 물론 밴사로부터도 리베이트를 챙겼다고 한다. “이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 가맹점주는 얘기를 나누는 동안 몇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밴사와 대기업들은 전산 유지보수비 등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리베이트를 주고 받는다. 이 돈은 자영업자들이 손님으로부터 카드 한 건을 받을 때마다 낸 카드 가맹수수료(결제수수료)에서 나온다. 지난해만 해도 밴사가 CU·GS25·세븐일레븐·미니스톱 등 편의점 4사에 건넨 금액은 510억원에 이른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는 370억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워낙 복잡한 구조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자영업자들이 낸 돈이 카드사를 거쳐 밴사로, 다시 대기업의 금고로 흘러가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땀과 눈물이 엉뚱한데로 새고 있는 것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밴사는 금융과 정보통신업의 속성을 동시에 띤다. 그러다 보니 정부 안에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국회도 영업시간과 출점 규제 등 표를 의식한 정책만 앞세웠을 뿐 대기업이 밴사를 통해 자영업자들의 돈을 챙겨왔다는 사실에는 무관심했다. 대기업이 본업을 통해 돈 버는 것은 규제하고 본업이 아닌 곳에서 돈을 챙기는 것은 놔두는 역설이 생긴 셈이다.

뒤늦게나마 정치권에서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 밴 리베이트를 근절할 방안을 찾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소상공인을 위한 전용 밴사 설립 아이디어도 검토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한숨을 달래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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