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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무력충돌 등 험한 꼴 보다가 패트 열차 탑승
정치인들이 나를 바꾸겠다면 별렀던 것은 예전부터였지만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년 전인 지난해 12월이다. 당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나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라며 단식을 단행했다. 마침내 여야 5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취지의 합의문을 만들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정치권은 나를 두고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정당의 손에 이끌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열차를 탔다. 나를 패스트트랙 열차에 타지 못하게 하려는 자유한국당과 태우려는 범여권의 충돌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창피하다.
일단 나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 현재 모습부터 말씀드리는 게 맞겠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국민들은 2016년 20대 국회의원을 뽑을 때 자신이 속한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 그리고 정당에 각각 투표하셨을 거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최다 득표자 1인이 당선되고,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원 300석 중 47석(지역구 의원 253석)을 차지하는 비례대표 의석이 배분된다.
그래서 민주당 등 범여권이 주장한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을 전체의석을 배분하는 기준으로 삼자’는 거다. 예를 들어 10% 정당득표율을 얻는 정당은 전체 300석 중 10%인 30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지역구 선거에서 10석을 확보했다면, 남은 20석을 비례대표로 채워 30석을 만들어준다는 거다. 지역구 선거에서 30석을 이미 채웠다면 비례대표 의석은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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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에 이끌려 힘겹게 패스트트랙 열차를 탄 내 모습은 처음 거론된 완전한 연동형이 아닌 50% 준연동형이었다. 준연동형 모습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00% 연동형을 하면 초과의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독일은 선거 때마다 전체의석수가 달라진다.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은 절대 늘리면 안 된다는 국민 눈치를 본 거다.
하지만 힘겹게 패스트트랙 올라탄 뒤에도 이른바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로 불리는 이들은 자꾸 내 모습을 바꾸려고 협상을 벌였다.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지역구 의석을 250석 비례대표를 50석으로 하고, 50% 준연동도 50석 전부가 아닌 일부에만 적용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만약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에만 준연동형이 적용될 경우 남은 20석은 의석수와 관계없이 정당득표율을 통해 배분받기에 민주당에 유리하다. 최근 선거법 기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연동형 캡(cap)’이 바로 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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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1 협의체의 협상 상황을 보면 솔직히 내가 왜 1년 동안 이렇게 초조해하며 고초를 당했나 답답함이 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놨는데, 정당의석수를 보정 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은 지금과 비교해 고작 3석(47석→50석) 늘었다. 2015년 중앙선관위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를 살리기 위해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비율이 2대1(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이라고 권고했다. 민주당 아저씨들은 지난 1월 의원총회에서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을 당론으로 정해놓고는 모두 잊어버렸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놓친 채 지엽적인 ‘석패율제’와 ‘이중등록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모양새도 영 민망하다.
지역구가 줄어들면 통폐합 대상 선거구 의원들이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 무서워 비례대표를 3석 밖에 못 늘린 것 같은데 이러려면 왜 했나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한국당 이야기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겠다. 선거법 협상에 대안 제시 없이 반대로만 일관하다가 결국 범여권에 질질 끌려다니고 장외투쟁만 하는 게 제1야당이라니 창피하다. 그렇게 열심히 장외투쟁을 해도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느끼는 게 분명히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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