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은행 무기력이 부른 '정치 낙하산'

  • 등록 2016-10-13 오전 6:10:00

    수정 2016-10-13 오전 6:10:00

[이데일리 송길호 금융부장] 한국 금융을 옥죄는 정치권력의 질주에는 거침이 없다. 각종 경영 현안에 대한 은밀한 개입과 간섭, 여기에 기관장 인선은 아예 노골적이다. 국책은행은 물론 정부 지분 1%도 없는 민간은행조차 이미 전리품이 된지 오래. 사실상 주인 노릇하며 자신들의 놀이터로 만든다.한시적 정치권력의 무책임한 집단적 배임이다.

현기환(전 정무수석)의 낙하산 기착지를 둘러싼 내홍이 은행권을 흔들고 있다. 국민은행장에서 기업은행장까지 각종 설이 난무한다. 정치권발 각종 하마평, 형식적인 은행장 선임절차, 그 과정에서 진행되는 노조의 반발, 마치 각본을 짠듯한 낙하산 인사와 노조의 전격적인 화해. 인사철만 되면 흘러간 영상처럼 재연되는 한국 금융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한국 금융은 죽었다” 며칠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전직 은행장은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은행장 자리가 얼마나 가볍게 보이면 이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느냐는 얘기다. 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정치권에 입성해 몸값을 높인 후 다시 은행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성공신화’. 비뚤어진 정치금융의 결정판, 한국 금융의 후진성을 극명히 드러낸다.

사실 모든 낙하산 인사를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내부 승진이 절대선이 아니듯 낙하산 인사도 절대악은 아닐 터이다. 적절한 외부 인재를 리더로 영입하는 일은 순혈주의에 물든 폐쇄 조직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법. 집단사고의 위험을 줄이고 새로운 시각을 통해 조직역량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인사일 경우에 한한다.

검증되지 않은 인사의 낙하산 행렬. 그에 따른 결말은 참담하다. 홍기택(전 산업은행 회장)의 일탈은 비근한 예다.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마련이다. 직위에 상응하는 능력과 경륜, 인선에 따른 파장. 이에 대한 종합적 고민 없이 이뤄지는 나눠먹기식 보은인사는 해당 기관은 물론 금융산업 전체 질서를 파괴한다.

은행 낙하산 인사의 이면에는 두가지 복합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 은행을 일종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정치권력의 오도된 시각, 뒤틀린 욕망을 투영한다. 동시에 자생력을 잃어버린 은행산업의 부끄러운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이다.

이는 어쩌면 은행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오랜 관치의 울타리에서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로 연명하며 경쟁력을 잃어버린 현실. 하지만 땅짚고 헤엄치기식 ‘돈장사’만으로도 적당히 누릴 수 있는 경영의 후진성. 이 때문에 누구를 행장으로 앉혀도 은행은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는 정치권력의 안이한 인식이 낙하산의 봉인을 분별 없이 풀어헤치고 있는 셈이다.

보신에 급급한 은행권의 무기력한 행태는 이미 고질적인 적폐가 됐다. 전직 금감원 고위간부는 질타한다. “재량이 주어져도 당국에 먼저 가이드라인부터 달라고 한다.” 재량의 범위내에서 자발적으로 업무영역을 넓히고 혁신을 일으키려는 적극적인 자세는 언감생심(焉敢生心). 오히려 사후책임을 의식해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정해달라며 당국에 매달리기 일쑤라는 얘기다. 관치에 깊게 물든 은행들의 생존법인지 모른다.

한국 금융이 살아나려면 무분별한 낙하산 관행을 타파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권력이야 전리품을 계속 향유하고픈 유인이 있겠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도는 있는 법이다. 그 이전에 은행 스스로 변할 일이다. 정치권에 만만히 보이지 않아야 감히 낙하산을 투척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게 아닌가. 창의와 효율, 전문성과 혁신 없이 기존 틀내에서 안주하려는 보신의 행태를 지속하는 한 은행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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