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의 귀환…미술시장 큰손, 지갑 다시 열까

작년 낙찰총액 1153억원…5년래 최저
이우환 149억어치 팔려 '낙찰총액 1위'
김환기 독주 4년 만에 밀어내며 추월
낙찰총액 57억원에 그친 '2위 김환기'
올해 첫 메이저 케이옥션 '1월경매'서
30억 전면점화로 시장회복 기대 높여
  • 등록 2021-01-18 오전 3:30:01

    수정 2021-01-18 오전 3:30:01

김환기가 1973년 그린 회색조의 전면점화 ‘22-Ⅹ-73 #325’. 올해 첫 메이저경매인 케이옥션 ‘1월 경매’에 시작가 30억원을 부르며 새 주인을 찾는다. 이번 출품을 두고 경매에 나서는 작품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기대가 적지 않다. 거래가 성사된다면 바닥을 친 미술시장의 소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어서다(사진=케이옥션).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153억원. ‘2020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연말결산’에 이변은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역대 경매시장 최고치에서 반토막쯤 건진 결과로 마무리했다. 지난 몇년간 국내 경매시장의 낙찰총액은 더디지만 증가하는 그래프를 그려왔다. 2014년 971억원을 찍은 뒤, 2015년 1880억원, 2016년 1720억원, 2017년 1900억원, 2018년 2194억원으로 이어졌다. 극심한 불황에 시달린 2019년, 1565억원으로 거꾸러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는 이마저도 무너뜨렸다. 1153억원은 국내 사상 최고치였던 2018년 2194억원에 비하면 52.5% 수준. 케이옥션·서울옥션·마이아트옥션·아트데이옥션·아이옥션 등 국내 경매사 8곳의 매출을 싹싹 긁어 보탰지만 역부족이었다.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낙찰총액이란 불명예를 피할 순 없었던 거다.

‘안 되면 돌아가라’ 했던가. 그나마 출품작 수가 버팀목이 됐다. 3만 276점(낙찰률 60.61%)이었는데. 이는 2019년 2만 5962점, 2018년 2만 6290점, 2017년 2만 8512점 등, ‘지난 5년 동안 가장 많은 출품 수’란 기록도 만들었다. 경매시장의 낙찰액 규모를 죽죽 끌어올리던 대작의 빈틈을 메운 십시일반이라고 할까. 무력하게 시장을 멈춰 세우지 않는 또 다른 동력을 본 셈이다.

‘가장 낮고 가장 많은’ 이 수치들이 가져온 변화가 적지 않다. 당장 영원한 블루칩일 줄 알았던 ‘김환기 불패신화’에 제동이 걸렸다. 낙찰총액 1위 자리를 이우환에게 내준 거다. 2019년 249억 6000만원(낙찰률 72.95%), 2018년 354억 7000만원(81.68%), 2017년 253억 9800만원(76.22%) 등 압도적인 파이로 미술시장을 이끌었던 김환기가 지난해 기록한 낙찰총액은 57억 947만원(낙찰률 60.63%)에 불과했다. 대신 김환기의 무한독주를 4년 만에 밀어낸 이우환은 149억 7300만원으로 한 해를 마감하며 ‘이우환 시대’를 열었다. 228점을 출품해 180점을 팔아낸, 78.95%란 높은 낙찰률도 챙겼다.

경매사 매출 순위에도 변동이 생겼다. 케이옥션이 517억 3890만원으로 선두에 나섰다. 단단하게 1위를 지키던 서울옥션은 434억 1400만원을 찍으며 2위로 밀렸는데, 코로나19가 막은 홍콩경매의 빈자리가 대단히 컸다.

‘2020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연말결산’ 중 ‘2020년 낙찰총액 30순위 작가 비교’.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아트프라이스와 함께 지난해 온·오프라인 미술품 경매 낙찰액을 합산한 결과로 1153억원을 발표했다. 그중 ‘낙찰총액 1위’에 오른 이우환은 김환기의 무한독주를 4년 만에 밀어내고 149억 7300만원을 기록했다(자료=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미술시장 회복가능성 바로미터된 ‘김환기 점화’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으나 미술품 경매는 새해에도 계속된다. 올해 첫 메이저경매가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열린다. 이번 케이옥션 ‘1월 경매’에 나서는 출품작은 130점. 모두 92억원어치다.

무엇보다 이번 경매에 기대치를 높이는 신호가 있다. 김환기(1913∼1974)의 귀환이다. 지난해 1950년대 반구상화를 중심으로 이름만 이어가다시피 했던 김환기가 오랜 침묵을 깨고, 블루오션의 돛이라 할 전면점화를 걸고 돌아온 거다. 뉴욕시대의 끝에서 타계 한 해 전 그린 ‘22-Ⅹ-73 #325’(1973)가 그것이다. 30억원을 시작가로 부를 작품은 회색조의 전면점화. 화면을 가득 채웠던 점들을 덜어내고 선 같고 획 같은 여백을 길게 만든, 드문 구성을 취하고 있다. 맑고 깊은 푸른색, 오묘하고 짙은 붉은색에 비해, 묵직하다 못해 비장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마치 전장에 나서는 전사와 같다고 할까.

실제로 지난해 이전까지 최소 3년의 미술시장은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김환기를 극복해야 할 대상은 김환기뿐이란 얘기까지 나왔을까. 푸른점화, 청록점화, 노란점화 등이 나오는 대로 팔려나가며 매번 기록 경신에 나섰고, 마침내 2018년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나온 붉은 점화 ‘3-Ⅱ-72 #220’(1972)이 6200만홍콩달러(약 85억원)에 팔리며 미술시장을 평정했다(2019년 11월 기록한 1971년 작 ‘우주: 5-Ⅳ-71 #200’의 132억원은 크리스티 홍콩경매에서 낙찰된 것으로 국내 경매시장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그러던 것이 미술시장이 가라앉으며 김환기의 전면점화도 함께 가라앉았다. 거래 자체에 나서질 못했던 거다. 때문에 이번 김환기의 점화에 단순히 경매에 나서는 작품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기대가 적지 않다. 잠든 큰손을 깨우는 시그널인 동시에, 만약 거래가 성사된다면 바닥을 친 미술시장의 소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거다.

‘22-Ⅹ-73 #325’의 가격은 30억∼50억원을 추정한다. 작품이 경매에 나선 건 세 번째. 2012년 12월에 서울옥션에서 12억원, 2018년 11월 케이옥션에서 30억원에 팔리며 몸값을 올렸더랬다.

김환기의 ‘Ⅶ-69’(1969). 종이에 그린 유화 작품으로 전면점화 ‘22-Ⅹ-73 #325’와 함께 20일 여는 케이옥션 ‘1월 경매’에 추정가 1억 5000만∼3억원을 달고 나선다. 십자구도로 분할한 화면의 상단에는 각기 다른 색의 점을 채웠고 하단에는 비교적 자유로운 선과 도형을 배치했다(사진=케이옥션).


△‘한국 추상미술 쌍벽’ 유영국, 작가 최고가 경신 주목

눈여겨볼 대목은 한군데 더 있다. 유영국(1916∼2002)이 작가 최고가 경신을 이룰 수 있을지 여부다. 이번 경매에서 새 주인을 찾는 ‘작품’(Work·1989)이 그 주인공이다 . ‘한국 추상미술사’에서 유영국은 김환기와 쌍벽을 이룬다. 하지만 다른 결을 가진 ‘선구자’라 한다. 김환기가 반구상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추상에 다가갔다면, 유영국은 초기부터 기하학적 추상언어에 매료됐다. 이후에 그가 이룬 타협이라면 동그라미·네모·세모에 한국의 자연을 편입시킨 정도라고 할까. 그렇게 김환기에게 점이 있었다면 유영국에게는 도형이 있었다. 잔재주도 부리지 않고 오로지 유화로만 산을 비롯해 바다·들·나무·달 등 자연을 강렬한 원색의 도형으로 집약해 화면에 올리는 화업을 이어갔다. 출품한 ‘작품’의 추정가 7억∼15억원. 지금까지 최고가 기록은 2019년 5월 케이옥션에서 7억 7000만원에 팔린 ‘작품’(1960)이 가지고 있다.

유영국의 ‘작품’(1989). 20일 여는 케이옥션 ‘1월 경매’에서 추정가 7억∼15억원에 출품한다. 2019년 5월 케이옥션에서 7억 7000만원에 팔린 ‘작품’(1960)이 가진 작가 최고가를 경신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케이옥션).


지난 5일 작고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의 작품은 4점이 나서 응찰을 기다린다. 원체 매번 빠지지 않는 ‘단골작가’였지만, 타계 후 첫 경매인지라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건 인지상정일 터. 각각 1983·2000·2003·2018년에 제작한 ‘물방울’이 다른 매력을 풍긴다. 그중 한자 붓글씨에서 가장 기본적인 필획을 올린 바탕에 흘러내릴 듯한 물방울을 얹은 2003년 작품 ‘물방울 SA03014-03’이 추정가 5500만∼7000만원에, 비교적 초기에 작업한, 물방울이 스며 젖어든 듯한 바닥묘사가 독특한 1983년 작품 ‘물방울 SH84002’가 추정가 5000∼8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김창열의 ‘물방울 SA03014-03’(2003). 한자 붓글씨에서 가장 기본적인 필획을 올린 바탕에 흘러내릴 듯한 물방울을 얹었다. 20일 여는 케이옥션 ‘1월 경매’에서 추정가 5500만∼7000만원을 달고 새 주인을 찾는다(사진=케이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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