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교다]조교, 비정규직보다 못한 '無규직'

조교 10명 중 4명은 학생 아닌 직업 조교
일부 대학 법 맹점 악용해 부당해고하기도
"업무·근로시간 기재한 근로계약서 작성해야"
  • 등록 2015-01-30 오전 7:00:00

    수정 2015-01-30 오전 8:16:04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서울 A대학에서 행정직 조교로 일하는 김현진(30·가명)씨의 바람은 정규직 전환이다. 처음엔 대학이 수년 전 계약직으로 입사한 몇몇 조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줬다는 얘기를 듣고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이젠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교는 비정규직 보호법에서도 예외인데다 대학은 일자리를 잡지 못한 졸업생을 조교로 채용, 취업률 올리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전남대에서 홍보팀 소속으로 일해온 박세종(49)씨는 지난해 3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대학 측이 돌연 ‘계약 만료’를 통보해온 것이다. 대학 측의 요청으로 2010년 ‘전문계약직’에서 ‘조교’로 신분을 바꾼 것이 화근이었다. 전남대는 조교가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 규정에서 예외에 속하는 점을 악용, 박씨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박씨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법원은 지난해 12월 “박씨는 고등교육법이 정의한 조교와 거리가 있다. 기간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해야 한다”며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전남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조교 10명 중 4명은 학생이 아닌 ‘직업형 조교’다. 부수적으로 학업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들은 조교가 직업이자 생계 수단이다. 그러나 대부분 조교가 계약직인데도 최소한의 보호 수단인 ‘비정규직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2007년부터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기간제 근로자가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 비정규직을 2년 넘게 사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조치다. 하지만 조교는 ‘비정규직 보호법 예외직종’이어서 계약기간 연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용노동부가 입법 당시 조교를 학업과 근로를 병행하는 학습근로자로 판단한 때문이다. 비정규직법에서는 조교를 ‘교육·연구 및 학사에 관한 사무를 보조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우리가 생각한 조교는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연구 조교였다”며 “(조교를)비정규직법 예외 직군에 넣은 이유는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학위 취득에 2년 이상이 소요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대학은 이 같은 법의 맹점을 악용해 ‘직업형 조교’를 부당 해고하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박세종 전 전남대 홍보담당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씨는 “판례로 남겨 유사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에서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는 대신 법원에 소송을 냈다”며 “부당 해고된 직업형 조교의 상당수가 대학과 싸우기 버거워해 복직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직업형 조교는 물론, 연구조교나 실습조교도 근무 시간과 직무 내용이 명시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장은 “업무 내용과 근로시간을 담은 명료한 고용계약관계를 제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제도가 마련된 뒤 노동조합을 설립하면 목소리를 내기가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교가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다보니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년 전인 2005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표한 ‘대학조교 실태조사’가 가장 최근 자료다. 당시 조사에서 전국 223개 대학에 2만2580명의 조교가 근무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직업형 조교는 38%(8580명), 학생조교가 62%(1만4000명)였다. 교육계에서는 비정규직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동원하는 대학들이 늘면서 직업형 조교 비율이 과거에 비해 더 높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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