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문 안했다" 위증…80세 간첩조작 수사관, 실형 확정

'재일동포 간첩조작' 고병천, 징역1년…대법, 상고기각
시효 만료로 고문행위 처벌 피해…재심서 위증해 실형
구속 후 뒤늦게 고문 인정 불구 "관행이었다" 발뺌
  • 등록 2018-11-05 오전 7:00:00

    수정 2018-11-05 오후 2:57:32

국군보안사령부의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윤정헌(왼쪽)·이종수씨가 지난 5월28일 오후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고문 수사관 고병천씨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80년대 국군보안사령부 대공처에서 근무하며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고문 수사관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고문에 대해선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피했던 그는 자발적으로 재심 재판에 나가 거짓말을 했다 뒤늦게 법의 처벌을 받게 됐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위증 혐의로 기소된 전 보안사 대공수사관 고병천(78)씨에 대해 상고기각 결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이번 상고기각 결정은 고씨의 상고이유 주장이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고요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급심에서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했던 고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사소송법 383조는 상고요건을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을 때 △판결 후 형의 폐지나 변경 또는 사면이 있는 때 △재심청구의 사유가 있는 때로 제한한다. 다만 원심에서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를 선고 받았을 때에 한해 사실 오인이나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가 가능하다. 아울러 같은법 380조는 상고이유 주장이 이같은 상고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엔 상고기각 결정을 하도록 했다.

보안사 ‘고문 전문가’, 재심 재판 스스로 나가 피해자 면전서 고문 부인

과거 보안사 소속 육군 준위였던 고씨는 자신이 고문했던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이종수씨와 윤정헌씨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고문을 한 적이 없었다”는 위증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이씨와 윤씨는 긱긱 한국 유학 중이던 1982년과 1984년 보안사로 끌려가 수십여일 간 불법구금 상태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후 간첩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각각 징역 10년과 7년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고문을 주도했던 것이 당시 보안사 대공처 수사2계 ‘학원반’ 팀장이었던 고씨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소위 ‘장인’으로 통했던 고씨가 이끌던 학원반은 당시 재일교포 유학생들을 집중 타깃으로 삼아 간첩으로 조작했다.

고문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피했던 고씨는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출석해 고문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다른 고문 수사관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는 식으로 소극적 대응을 했던 것과 달리 고씨는 자발적으로 조사에 응해 고문과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2009년 윤씨와 이씨 사건의 재심을 권고했다. 고씨는 재심이 개시되자 이번엔 법정까지 직접 출석해 거짓 증언을 했다. 그는 2010년 12월16일 재심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해 “윤씨와 이씨에 대한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반복했다.

이씨와 윤씨는 모두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고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은 수사를 미적대다가 위증혐의 공소시효 만료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13일에야 고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가 됐지만 고씨는 첫 공판에서까지 위증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재판부와 피해자 대리인의 거센 압박 속에 2회 공판에서 드디어 사과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4월2일 3회 공판에서 사과를 듣기 위해 일본에서 찾아온 피해자들 앞에서 고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그 사람은 내가 고문하지 않았다”는 식의 회피성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 같은 고씨 태도가 이어지자 1심 재판부였던 이성은 판사는 이례적으로 공판 도중 고씨를 법정구속했다.

압박에 뒤늦게 고문 사실 인정했으나 “관행이었다” 주장

고씨는 구속 후 진행된 지난 4월말 결심공판에서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고 진심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럽다”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고문은) 관행이었다”는 회피성 주장은 고수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5월28일 고씨에게 “고문과 가혹행위를 관행으로 규정함으로써 본인에게 그다지 책임이 없다거나, 지금에 와서 달리 평가하는 건 부당하다는 식으로 잘못을 은연중에 표출하며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어 “재심 재판에 출석해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를 은폐하려 한 행위는 피해자들에게 고문·가혹행위를 한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고씨가 여타 수사관들처럼 소환에 불응하거나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지 않고 굳이 법정에 출석해 실체적 진실 발견을 방해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윤정헌·이종수씨를 비롯한 고문 피해자들과 대리인들이 28일 오후 보안사 고문 수사관 고병천씨의 1심 판결 직후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이데일리DB)
1심 선고 후 피해자 윤씨는 “고문 트라우마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법정에서 고씨와 같은 공간에 있으며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걸 보고 마음속 깊이 큰 상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이씨는 “고씨는 보안사 수사관 중에서도 아주 악질이었다”며 “결국 자신이 잔머리를 쓰다가 자기 잔머리에 넘어간 것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고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즉각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지난 8월 고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늦게라도 사실대로 진술해야 하는 사건인데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한편 보안사 고문수사관에 대한 실형 확정 판결은 추재엽 전 서울양천구청장에 이어 두번째다. 추씨는 보안사 간첩조작을 폭로한 ‘보안사’의 저자인 김병진씨가 자신의 고문 사실을 폭로하자 이를 부인하는 문자메시지를 살포했다. 공직선거법과 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된 추씨는 2013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3월의 확정판결을 받고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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