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로 빵을 만들다 [물에 관한 알쓸신잡]

인분비료에서 화학비료까지
  • 등록 2022-05-07 오전 11:30:30

    수정 2022-05-07 오전 11:30:30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2015년 개봉했던 SF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은 사고로 화성에 혼자 고립됩니다. 그는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해갑니다.

물과 산소는 우주인답게 화학반응을 통해 의외로 쉽게 만들어냅니다. 문제는 장기적인 식량 확보였습니다. 주인공은 우주식량으로 가져간 감자를 재배해 식량을 확보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영화 ‘마션’ 스틸 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물과 공기, 그리고 적절한 양분을 가진 토양이 필요합니다. 물과 공기는 화학반응으로 구했는데 문제는 화성 토양에 영양분이 없어 작물을 재배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생각해 낸 방법은 자신과 동료들의 인분을 비료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분으로 키운 감자 덕분에 주인공은 화성에서 4년을 버텨낸 후 지구로 무사 귀환합니다.

주인공은 지구로 귀환한 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강연에서 인분을 이용해서 농사짓는 게 생각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과거에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던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화성에서 겪었던 생사를 넘나드는 고생에 비하면 인분을 비료로 쓰는 게 무슨 대수일까 싶습니다.

혹시 서양 사람들은 인분을 비료로 썼던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요? 추측대로 서양에서는 인분 대신 가축분뇨를 비료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인분 비료 사용은 주로 아시아 지역의 농사법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기록을 보면 고려 말이 되어서야 인분과 가축분뇨를 이용한 시비법이 시작됐습니다.

인분과 가축분뇨가 훌륭한 비료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생산량을 늘릴 수 없으니 공급량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밖에서는 대변을 보지 않고 참았다가 자기 집에 와서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분은 귀한 비료 대접을 받았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중화장실을 설치해 두고 쌓인 인분을 수거해 농민들에게 파는 직업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건물주가 세입자들의 인분을 수거할 수 있는 인분 수거권을 인분수거조합에 팔아 부가적인 수익을 챙기기도 했습니다. 인분을 많이 구할 수 있는 좋은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조합 간에 구역 싸움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인분을 비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지만 유럽에서는 인분 사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 인분 대신 가축분뇨가 주로 사용됐습니다. 인분을 비료로 사용할 경우 기생충 전염의 위생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인분을 이용해 키운 작물을 먹는다는 사실에 심리적인 거부감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인분과 가축분뇨의 자연적인 비료 공급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비료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비료의 3요소인 질소·인산·칼륨 중에서 인산 비료와 칼륨 비료는 비교적 쉽게 광석에서 채취합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작물 생육에 가장 중요한 질소 비료는 광석에서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질소 비료의 재료는 어디서 찾았을까요? 질소 비료는 의외의 재료로부터 얻게 되는데 그건 바로 공기입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는 산소 21%, 질소 78%로 대부분 질소로 구성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질소 비료 생산을 위해 공기 중에 거의 무한하게 존재하는 질소로 눈을 돌립니다. 공기를 이용해 빵을 만들려고 하는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생각은 1900년대초 과학자들에 의해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몇 년 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의 질소를 인공적으로 농축해 질소 비료 성분인 암모니아를 합성하는데 성공합니다. 질소 비료의 대량 생산으로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면서 그는 19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고 ‘공기로 빵을 만든 과학자’라는 별칭도 얻게 됩니다.

인분을 비료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화학비료는 농업 생산량을 혁명적인 수준으로 증가시키면서 식량난을 단박에 해결합니다. 덕분에 1900년초 15억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100년 만에 5배가 늘어나 2022년 80억명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5배가 넘게 늘어난 인구의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늘어난 농경지 면적은 2배가 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1990년 이후에는 농경지 면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2배 늘어난 농경지 면적으로 5배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만큼 농업 생산성이 높아진 셈입니다. 관개시설을 비롯한 농업기술이 발달한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당연히 비료입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화학비료가 인류에게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학비료 개발 이전에는 귀한 비료 취급을 받던 인분이 지저분한 똥으로 전락하면서 처리를 고민해야 하는 오염물질이 됐습니다.

화학비료 이전에는 땅이 낸 작물을 우리가 먹고 우리가 만들어 낸 배설물을 흙으로 돌려보내 작물이 자라게 하고, 그 작물이 다시 우리의 먹거리로 돌아오는 인간과 자연의 순환이 있었지만 화학비료 이후 사라졌습니다.

화학비료의 아쉬움은 또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비료는 토양에 ‘넉넉하게’ 뿌려집니다. 작물에 흡수되지 못하고 토양에 남아 있던 비료는 비가 오면 빗물에 쓸려 하천과 호수로 흘러들어 물을 오염시킵니다.

화학비료의 발명은 인류에게 분명 축복입니다. 악취도 없고 가격도 저렴한 화학비료의 대량 공급으로 인류의 오랜 고민인 식량난이 해결됐으니까요. 하지만 화학비료가 우리에게 던져 준 새로운 숙제도 생겼습니다.

그간 부족한 비료를 찾던 우리의 고민은 이제 넘치는 비료가 가져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으로 바뀌어야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답을 찾아낼 겁니다. 마치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이 화성에서 생환한 일을 회고하면서 던진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 문제도, 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됩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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