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영란법, 고성장기 접대문화 바꿀 계기돼야

  • 등록 2016-09-05 오전 6:00:00

    수정 2016-09-05 오전 6:00:00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대기업 계열 A건설사 홍보실은 다음달부터 사내 다른 부서를 돌며 밥을 사기로 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언론 접대를 줄이는 등 돈 쓸데가 마땅찮아 져서다. 올해 할당받은 예산을 다 쓰지 못하면 내년도 예산 삭감이 불 보듯 해 마련한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술자리에서 먹고 마시는 데 쓸 돈을 직원 복지에 사용하겠다니 결과적으로 잘된 일 일지 모른다.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건 관가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과천청사 시절에는 국·과장급 선배가 민간 대기업 임원을 만나는 저녁 자리에 후배 공무원을 데려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아두라는 이유에서다. 정부청사의 세종시 이전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민간과의 비공식적 교류가 이제는 맥이 끊길 판이다. 골프 접대도 그렇다. 기업이 한 팀당 150만원 안팎의 비용을 대가며 정부 정책에 관한 ‘고준담론’을 나누는 모습은 당분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한 경제부처 고위관계자는 “휴일에 내 돈 30만원 가량을 내고 골프를 치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접대 문화가 크게 성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이 접대에 쓴 비용보다 더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고속성장했던 과거엔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저성장은 이미 현실이다. 그러나 접대 시장은 이런 현실과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해 국내 법인의 접대비 신고액은 약 10조원으로 5년 전보다 30%나 늘었다. 성매매 금지 국가인 한국에서 룸살롱 같은 유흥업소에서 긁은 ‘법카’(법인카드) 사용액만 1조원이 넘는다.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최근이었다. 이전에 담당했던 한 대형 건설사 홍보팀장이 올 봄 간암(癌)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자식에 노부모까지 부양하는 그는 아직 50대도 안 됐다. 저녁 자리에서 본 그의 대취하는 모습이 때로 위태롭고 안쓰러웠다. 그걸 “참 일 열심히 한다”고 평가했던 기자들의 책임이 결코 적지 않다.

깨달음은 언제나 늦고 짧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아버지, 가장들의 삶을 볼모로 더 많은 생산과 이익을 추구했던 한국 경제의 성장 공식은 더는 적합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그 낡음에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 시작은 접대 문화의 종언을 선언하는 것에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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