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격차 8년만에 벌어졌는데…복지예산 되레 5000억원 줄어

빈곤층부터 때린 경기불황
소득 5분위 배율 3개분기 연속 상승
상위 20% 소득, 하위 20%의 4.8배
미확정 예산 무리하게 넣은 정부안
국회서 '집행 불투명' 이유로 삭감해
  • 등록 2016-12-06 오전 6:00:15

    수정 2016-12-06 오전 6:00:15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빈곤사회연대 주최로 열린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등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신한·삼성·KB국민카드 등 국내 신용카드사 ‘빅3’(이용액 기준)의 지난 9월 말 현재 카드론(장기카드 대출) 채권액은 12조 9837억원에 달한다. 민간이 빌려 쓴 돈이 불과 3개월 사이 1조 1447억원이나 불어난 것이다. 대출자가 100만 명이라면 1인당 114만원 꼴로 대출을 늘린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득 감소 등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이 1금융권 이용 문턱이 높아지자 대출이 쉬운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대부업체 등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할수록 소득 많이 줄어



경기 불황에 저소득 계층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소득 하위 40% 이하 가구의 월평균 소득(2인 이상 가구 명목소득 기준)이 1년 전보다 일제히 내려앉았다. 이런 추세는 올해 들어 3개 분기 내내 지속하고 있다.

소득 감소의 골은 빈곤할수록 깊었다. 소득 하위 10% 가구의 3분기 월평균 근로소득은 작년 3분기보다 25.8%나 뒷걸음질했다. 하위 10~20%는 7.9%, 20~30%는 5.7% 각각 감소했다.

반면 소득 상위 10% 가구는 근로소득이 7.4%, 전체 소득도 2.5% 늘었다. 상위 20%도 근로소득과 전체 소득 모두 6.1%, 2.2% 증가했다. 불황의 한파가 고소득층은 사실상 비껴간 것이다.

이에 따라 장기간 개선 추세였던 소득 양극화 현상도 다시 뚜렷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3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분석한 ‘소득 5분위 배율’은 4.81로 지난해 3분기(4.46)보다 상승했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이 수치가 상승했다는 것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소득 격차가 커졌다는 뜻이다.

5분위 배율은 앞서 올해 1분기(1~3월)와 2분기(4~6월)에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상승했다. 연간 기준으로는 세계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4.98을 찍고 매년 하락하다가 올해 8년 만에 반등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 경제부처 관료는 “양극화 확대가 단순 사회 갈등을 넘어 한국에서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같은 이변을 낳는 등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소득 5분위 배율 [자료=통계청]
양극화 심해지는데 복지 예산은 삭감

정부가 주목하는 양극화의 배경은 일자리다. 고용 계약 기간이 1년 또는 한 달 미만인 임시직과 일용직 고용 한파가 저소득층 소득 감소의 주요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제조업 일자리가 줄면서 포화 상태인 영세 자영업으로 떠밀리는 근로자가 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통계청 ‘고용동향’을 보면 올해 3분기까지 임시·일용직 근로자는 작년보다 5만 9000명 감소했다. 2014년 10만 5000명, 지난해에는 5만 5000명이 증가했다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반면 자영업자는 작년 6월부터 1년 2개월 연속 전년보다 줄다가 지난 8월부터 다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 10월에는 자영업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무려 12만 4000명 급증했다. 자영업자 수가 반등하는 시기(올해 8월)는 제조업 취업자 규모가 감소세로 전환한 때(올해 7월)와 거의 일치한다.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영세 자영업으로 밀려나면서 대안 없는 경쟁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도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 확충 등 대안 마련을 고심 중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고용 시장 여건이 좋지 않으니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정부가 앞장서서 불안정한 임시·일용직을 확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내년 국내 실업률이 3.9%로 2001년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면 취약 계층의 고용 및 소득 여건은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마당에 내년 복지 예산이 삭감된 것을 두고 ‘정책 엇박자’라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 정부가 책정한 내년도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130조원이었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129조 5000억원으로 5000억원이 잘려나갔다. 정부가 노동개혁 법안의 국회 통과를 전제로 실업(구직)·산재급여에 쓸 재원 4500억원을 끼워 넣은 탓이다. 확정하지도 않은 정책 예산을 담았다가 전체 예산 규모만 쪼그라드는 낭패를 본 것이다. 다만 박춘석 기재부 예산실장은 “긴급 복지(100억원↑)와 생계급여(3974억원↑), 장애인 일자리(107억원↑) 등 저소득층 지원 예산은 올해보다 증액됐다”고 설명했다.

계층별 맞춤 대책 필요…노동정책도 재검토해야

전문가들은 소득 계층별로 차별화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소득 하위 10% 같은 빈곤층은 근로 무능력자 등 일할 수 없는 사정을 가진 경우가 많으므로 복지 확대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서 “빈곤층 위의 차상위계층은 경기가 건설업을 빼고는 전반적으로 둔화하고 있음을 고려해 정부가 공공 일자리 등을 확대해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확정한 내년 예산안에는 총 500억원을 투입해 공공 부문 일자리를 1만 개 이상 확대하는 방안이 담기긴 했다. 그러나 이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일반을 지원하기엔 한계가 명확하다.

정부의 노동 정책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노동개혁 5개 법안 중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실업(구직)급여 수급 요건을 ‘이직일 전 18개월간 180일 이상 근무(보험 가입)’에서 ‘24개월간 270일 이상 근무’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경우 최근 경기 침체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단기 채용자에게는 실업 급여가 ‘그림의 떡’이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간 정부가 원칙만을 고수하며 법안 표류를 자처했으나, 앞으로는 현실에 맞춰 일부 양보와 타협을 하는 탄력적인 전략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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