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20년을 마약과 싸워왔지만…"사회로부터의 도움 없었다"

`마약중독 회복자` 이동욱씨 "회복프로그램이 절실"
사업실패후 손댔다가…재활치료 못해 재수감 반복
"재활교육 효과 없고 중독자모임은 재발 위험 높아"
"처벌만이 능사 아냐…치료회복 시스템 마련돼야"
  • 등록 2019-09-09 오전 6:17:00

    수정 2019-09-09 오전 6:17:00

[남양주=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지난달 28일 필로폰을 구해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방송인 하일(61·미국명 로버트 할리)씨가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달 4일에도 필로폰을 수 차례 구매해 투약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현직 변호사가 역시 같은 형량을 받았다. 특히 올들어서는 마약에 손 댄 재벌가 자제들의 체포 소식이 잇따르며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범죄 소식이 전해지는 요즘 대다수 평범한 시민들은 `물의를 일으킨 이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실제 마약에 손을 대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처벌도 있어야 하겠지만 제대로 된 마약중독 회복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20여년간 마약 중독에 고통 받다 이를 극복한 이동욱(48)씨 역시 “마약범죄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엄벌보다 치료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년간 마약 중독으로 고통받다 회복된 이동욱(48)씨가 경기 남양주의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씨가 처음 마약에 손을 댔을 때 갓난아이였던 큰아들은 성인이 되어 그의 일터에서 아버지를 돕는다.


외환위기 직후 손댄 마약에…주사기만 봐도 `배 아파`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실패한 사업을 정리한 뒤 고향으로 내려온 이씨에게 중·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후배는 `좋은 것`이 있다며 필로폰을 권했다. 불안한 미래와 고통스런 현실을 잊으려 마약에 손을 처음 댔다. 그러나 두려워진 이씨는 곧 경찰에 자수했다. 초범이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당시 나이 27살, 결혼 3년차였던 이씨는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아내와 두 아들을 위해 마약을 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마약 맛을 본 몸이 기억하고 주사기만 봐도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중독자들끼리 은어로 이 반응은 `똥 마렵다`고 한다. 실제 배변을 의지로 조절할 수 없듯이 마약 관련된 것만 봐도 신체반응이 온다는 것. 결국 재범으로 붙잡힌 이씨는 징역 2년 6개월을 받았다. 그렇게 마약에 손 대고 경찰에 붙잡히길 반복한 것만 5차례, 20여년간 마약에 시달렸고 총 8년 6개월 동안 감옥에서 지냈다.

그러나 교도소에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사회복지사들이 마약 중독 위험성을 교육하고 갔다. “마약을 경험한 사람들이 투약을 중단했을 경우 12단계 금단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럴 때 꿋꿋이 참고 견디면 극복할 수 있다”는 복지사들의 교육 내용을 들으며 이씨를 비롯한 마약투약사범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씨는 “마약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투약자 기분을 절대 알 수가 없다”며 “교도소에서는 팔에 마약주사기를 꽂는 영화 장면을 보여주는 등 헛다리만 짚었다”고 꼬집었다. 주사기만 봐도 중독자들에게는 마약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오는데 말이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첫 출소 이후 이씨는 서울의 한 시립병원을 찾았는데, 이 곳은 마약중독자를 무료로 치료해 준다고 정부가 홍보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의사가 이씨에게 물었다. “어떤 기분인가요?”, “의지를 꺾을 정도로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드나요?”라고.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치료가 계속되자 그는 두 달 만에 병원을 나왔다.

20년간 마약사범 되레 늘어…“처벌보다 치료에 방점을”

실제 법무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마약사범 재범률은 2016년 37.2%, 2017년 36.1%, 2018년 36.6%로 비슷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서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예산 자체가 연간 2억원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중독자의 1인당 입원치료 비용이 2000만원 가량으로 추산되는 만큼 이 예산으로 1년에 치료 가능한 인원은 20명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다고 느낀 그는 `NA(Narcotics Anonymous·익명의 약물중독자들)`라는 중독자 회복 모임에 나가 위로를 받고 의지를 다지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씨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중독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이들끼리 모여 있으면 오히려 서로 눈이 맞아 다시 마약을 하러 가기도 해 더 위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지난 2016년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자괴감에 극단적 시도까지 했던 이씨는 일주일 간 사경을 헤매다 영적인 경험을 한 뒤 마약을 투약하고 싶은 신체반응이 사라졌다고 했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해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그는 현재 남양주 건설현장에서 안전시설물을 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삶을 포기한 상태에서 우연히 극적 체험을 통해 마약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지만 이씨같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씨는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처음 마약을 시작한 20년 전부터 사회는 마약중독자들을 혼내고 다그치기만 했는데 마약사범이 과연 줄었느냐“고 되물으며 “이제부터라도 치료에 더 힘을 쏟아야 마약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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